한국 의회 대표단-펠로시 美 하원 의장, 12일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면담
비핵화 회담 전망 놓고 치열한 공방전 펼쳐…예정시간 30분 훌쩍 넘겨 면담 종료
펠로시, 20년 전 방북 경험 소개하며 "그때부터 북한 정권 안 믿는다"
펠로시 "한일관계도 나빠져 걱정"…文 의장 "日이 한마디 해달라고 한 느낌"

미국을 방문 중인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 지도부가 12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회의사당에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왼쪽 두번째)과 면담하고 있다.

"나는 북한을 믿지 않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진짜 의도는 비핵화가 아니라 남한의 무장해제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12일(현지시각) 워싱턴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등 한국 의회 대표단과의 면담에서 이같이 말했다. 방미 대표단과 펠로시 의장은 이날 면담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전망을 두고 상당한 설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방미 대표단과 펠로시 의장의 면담은 예정된 30분보다 두 배인 1시간을 훌쩍 넘겼다.

문 의장 등은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성공하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자, 펠로시 의장은 "싱가포르 회담도 쇼였다"고 반박했다. 펠로시 의장은 " "싱가포르 선언문은 김정은에 주는 선물"이라면서 "(회담 후)북한의 비핵화(조치)가 없었다"고 평가했다고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전했다.

대표단에 따르면 펠로시 의장은 ‘2차 미북정상회담에 한국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에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미국과 북한이 적이 아니고 베트남처럼 우방으로 변하는 것"이라면서 "베트남이 친미국가가 된 것처럼 북한도 친미국가가 되면 (미국의)국익 확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펠로시 의장은 "북한을 믿을 수 없다"면서 20년 전 북한에 다녀온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의 가난과 비참함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였다"며 "그때부터 북한 정권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지금 북한은 그 때와 많이 다르다"며 "가까운 시일내 다시 방북해보라"고 권했다.

정동영 대표는 "트럼프의 북핵 외교는 과거 북핵 해법의 원조인 클린턴 정부 시절 '페리 프로세스'를 잇는 정책이 아니냐"고 묻자 펠로시 의장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비핵화라는 말을 찾을 수 없었다"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

배석한 한인 출신 앤디 김 하원의원도 "북한이 핵 폐기 의사를 보이는 조치를 한 게 없다"며 펠로시 의장의 편을 들었다. 정동영 대표는 "영변 핵시설 영구 폐기는 북한의 핵능력 80% 상실을 의미한다. 핵능력 80%가 불능화되면 가장 확실한 것 아니냐"고 했다.

갑론을박이 길어지자 펠로시 의장은 "나는 낙관하진 않지만, 기대감은 많다"며 "내가 틀리고 당신들이 맞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악화된 한일 관계도 이날 면담에서 주요하게 다뤄졌다. 펠로시 의장은 "최근 한·일 관계가 나빠져 걱정스럽다"며 "이 문제가 조속히 해결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문 의장은 "균형 감각을 갖고 봐달라"고 했다. 문 의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왕이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 의장은 이후 특파원들과 만나 "위안부 문제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진정한 사과"라면서 "합의서가 수십개가 있으면 뭐하나. 피해자의 용서한다는 승복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의장은 일본 측의 발언 철회 및 사과 요구에 대해 "(일본에) 사과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했다. 펠로시 의장이 한일 문제를 거론한 것에 대해선 "일본 측에서 사전에 한국쪽에 한마디 해달라고, 간단히 말하면 혼내 주라고 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