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 지분 79.9%를 보유한 프랑스 르노그룹 부회장이 르노삼성 부산 공장 근로자들에게 "노조가 파업을 계속하면 '로그'(소형 SUV) 후속 물량 논의를 할 수 없다"는 경고를 담은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해외 본사 임원이 생산 근로자들에게 직접 영상 메시지를 보내는 건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문 사례다. 그만큼 부산 공장 파업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르노 본사 측이 후속 물량을 끊겠다고 경고한 로그는 부산 공장 전체 생산 차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오는 9월 만료되는 로그 수탁 생산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일본 공장 등에 생산량을 넘기면 부산 공장 근로자 4000명 가운데 절반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부산 공장 생산직 근로자 평균 연봉은 8000만원(2017년)에 육박해 이미 일본 공장보다 20% 높다. 상식적으로 르노그룹 입장에서 일본 공장 생산 물량을 늘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르노삼성 노조는 기본급 인상, 자기계발비 인상, 특별격려금 지급 등을 요구하며 지난 4개월간 28차례 파업을 벌였다. 일은 언제 했는지 모를 지경이다. 지금도 사측의 절충안을 거부하며 파업 시간을 늘리고 있다.
원래 르노삼성노조는 상급 단체에 소속돼 있지 않은 온건 성향이었다고 한다. 2015년부터 3년 연속 무파업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민노총 지회(제2 노조) 설립을 주도한 새 노조위원장이 작년 말 취임하면서 기존 노조도 민노총에 가입시키겠다고 나섰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해 판매 실적이 18% 가까이 감소한 상황이다. 그래도 노조는 임금을 더 올려 달라고 파업을 일삼으니 르노 본사 입장에선 GM 군산 공장처럼 부산 공장 문을 닫거나 생산량을 대거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세계 자동차 시장은 카마겟돈이라 불릴 정도로 처절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카마겟돈은 자동차와 대혼돈이란 뜻의 아마겟돈을 합친 말이다. 2016~2017년 사상 최대 이익을 낸 미국 GM은 북미 사업장에서 인력 1만여명을 줄이는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섰다. 내연기관차 시대가 전기 자율주행차로 이행하고 자동차 공유 경제 등장 등 자동차 산업의 변화가 워낙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도요타도 작년 말 임원과 간부직 구조조정을 했다. 미국 포드 역시 유럽 공장 15곳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향후 5년 안에 벌어질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운을 건 개혁을 시도하고 있는데 한국 자동차 업계만 1980년대씩 노사 투쟁을 벌이고 있다. GM 군산 공장 폐쇄를 보고서도 '설마'하면서 '돈 더 내놓으라'고 떼를 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