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8일 정기국회 개원 시정연설에서 "장기간 부적절한 근로 통계 조사가 이뤄진 것에 대해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야당 의원들은 일제히 총리에게 야유를 보냈다. 연초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후생노동성 통계 조작' 사태로 아베 총리가 코너에 몰리고 있다. 야당은 아베의 경제 정책을 뜻하는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성과가 통계 조작으로 부풀려졌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제가 된 것은 일본 후생노동성이 근로자 1인당 급여와 노동 시간의 변화를 매달 조사해 집계하는 '매월근로통계'다. 이 통계엔 각 근로자의 임금 총액이 포함되어 있어 고용보험, 산업재해보험, 실업급여 등의 액수를 결정하는 기초 자료로 사용된다.
야당이 집중 포격하고 있는 것은 작년 근로 통계다. 근로 통계상 일본의 임금상승률은 작년 1월부터 전년에 비해 확 높아졌다. 특히 작년 6월의 경우 1년 전보다 근로자 임금이 3.3%나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21년 5개월 만의 최고 상승률이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아베노믹스 효과'가 수치로 증명되고 있다고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높은 임금상승률은 작년 1월부터 통계 집계 방식을 바꾼 결과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존에는 직원 규모 30~499명의 기업을 2~3년에 한 번씩 전면 교체해 표본 조사했는데, 작년 1월부터 절반만 교체하는 것으로 방식을 바꾸었다. 문제는 표본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임금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기업들이 집중적으로 포함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통계상 임금상승률이 실제보다 훨씬 높아졌다. 새로 포함시킨 기업들을 제외하고 다시 임금상승률을 따져 보니 작년 6월의 실제 임금상승률은 1.4%에 그쳤다. 애초 통계보다 1.9%포인트나 낮은 수치다. 24일 일본 의회에서는 "아베노믹스는 허구" "임금상승률을 부풀려 국민을 속였다"는 야당 의원들의 공격이 빗발쳤다.
규정을 어긴 통계 조작은 작년만의 일이 아니었다. 일본 통계 규정에 따르면 근로통계 집계 시 직원 500명 이상의 대기업은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대기업은 업종·산업별로 임금상승률이 제각각이라 표본조사로는 정확한 임금상승률을 뽑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선 대기업 4600여 개를 전수조사 했지만,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집권하던 2004년부터 대기업이 가장 많은 도쿄도(東京都) 지역에선 조사 대상 1400여 개 기업 중 약 500개 기업만 조사했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임금수준이 높은 도쿄 지역 900여 대기업 임금이 근로 통계에서 아예 누락되면서 일본 전국 평균 임금은 실제보다 낮아졌다. 작년 통계가 조작됐다는 것이 드러난 이후 그 이전 통계까지 조사해 드러난 결과다.
차이가 나는 것은 작년 통계 조작은 아베노믹스 효과를 과장하기 위해 임금상승률이 높게 나오도록 한 것이고, 2004년부터 2017년까지는 정반대로 임금상승률이 실제보다 낮게 나오도록 했다는 점이다. 문제는 잘못된 2004~2017년 임금 통계로 산정된 고용보험금이나 산재보험금도 덩달아 적게 지급됐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적게 지급된 2015만건의 보험금 환급을 위해 795억엔(약 8165억원)을 올해 예산안에 부랴부랴 넣기로 했다.
독립적인 기관이 아닌 한국의 행정안전부 격인 총무성에서 국가 통계를 총괄 관리하는 일본의 후진적인 통계 시스템에서 곪아 있던 부분이 터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요미우리신문이 25~27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후생성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다"는 답변이 85%에 달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통계 조작이 발생한 원인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