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백세' 시대이다. 최근 정부는 '노인 연령'을 만 65세에서 70세로 올리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그냥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오래 사는 게 중요하다. 노인들이 집을 벗어나 야외에서, 체육관에서 왕성한 신체 활동을 벌이는 '실버 스포츠 현장'을 돌아봤다.
"헐~ 헐!(hurry·빨리 비질하라는 뜻)."
지난달 11일 오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州)의 밴쿠버 컬링클에선 쉴 새 없이 고함이 터졌다. 목소리가 커질수록 스위핑(비질)은 더 분주해졌다. '딱, 딱' 스톤이 부딪치는 경쾌한 울림이 링크를 가득 채웠다. 동계올림픽을 방불케 하는 빙판 위엔 백발 성성한 노인 40여명이 컬링 경기에 한창이었다. 기자가 낯선 광경에 놀라자 클럽을 안내한 직원이 말했다.
"국가대표 못지않은 열정이죠? 시니어 컬링클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날 참가한 노인들의 평균 연령은 72.5세였다. 이들은 매주 두 번씩 링크를 찾아 2~3시간씩 비질을 하고 스톤을 던진다. 선뜻 다가서 말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경기에 집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클럽 회원들의 시계는 매년 9월 열리는 브리티시컬럼비아(BC)주 노인 체육대회에 맞춰져 있다. 이른바 '55+ BC 게임'. 캐럴 셀라스(76)씨는 "훈련을 통해 꾸준히 실력을 키우고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55+ BC 게임'은 1988년부터 매년 열린다. 노인들의 신체적·사회적 건강 증진을 위해 주정부와 민간 단체 등이 합작했다. 만 55세 이상 주민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출전 종목 제한도 없다. 단, 신체 능력 등을 고려해 50대와 60대, 70대, 80대 이상 등 나이별로 경기를 치른다. 매년 20~30개 종목에 약 3000명의 참가자가 몰린다. 대회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를 12개 구역으로 나눈 대항전이다. 일종의 '지역 실버 올림픽'인 셈이다.
본지 기자가 찾은 밴쿠버컬링클럽은 '제4구역' 선수들이 훈련하는 공간이었다. 연령별로 겨루는 대회에 맞춰 연습도 비슷한 나이대의 회원끼리 한다. 이 컬링클럽 최고령은 올해 101세인 롤라 홀름 할머니다. 젊은 시절 잠시 컬링을 배웠다는 그는 여든을 넘기고 다시 빗자루를 들었다. 홀름 할머니는 "얼음판에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컬링"이라고 말했다. 그의 새 목표는 올해 '55+ BC 게임' 대표로 나서는 것이다.
'55+ BC 게임'의 가장 큰 긍정적 효과는 동기부여다. 단순한 놀이·게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이앤 머피(63) 대회 조직위 국장은 "확실한 목표가 있는 노인들은 더 적극적으로 체육 활동에 임한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평상시 삶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55+ BC 게임'은 주(州) 내 여러 도시를 돌며 열린다. 매년 다양한 도시를 방문해 많은 사람과 친분을 쌓는 것도 노년층 정서에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회 운영을 돕는 자원봉사자 상당수도 65세 이상 노인이다.
대회 개최엔 매해 50만캐나다달러(약 4억2000만원) 정도의 예산이 든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와 개최 도시 등 지방정부의 지원, 지역 기업의 후원이 대략 60%를 책임진다. 개인이 부담하는 대회 참가비는 6만원 정도로 크지 않다.
대회 조직위가 추산한 '55+ BC 게임'의 경제적 부수 효과는 330만캐나다달러(약 27억5000만원)에 이른다. 대회 개최가 노인 참가자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소비, 관광, 일자리 등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 것이다. 신디 심슨 '55+ BC 게임' 조직위원장은 "노인 체육 대회지만 실제론 지역 모든 구성원이 화합할 수 있는 장이다. 평균 수명이 점차 늘어나는 만큼 앞으로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