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두 국방장관은 지난 23일 '광개토대왕함의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준' 논란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논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우리 주장을 뛰어넘을 수 없어 출구 전략을 쓰는 것 같다"고 했다. 오후 2시쯤 시작한 기자간담회에서였다. 하지만 그 시각 남해 이어도 인근 공해상에선 일본 초계기가 해군 대조영함을 겨냥해 근접 위협 비행을 하고 있었다. 간담회 도중 이를 보고받은 정 장관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일본은 지난달 20일 처음 레이더 조준 논란을 제기한 이후 우리 정부와 공방을 벌여오다 지난 21일 돌연 당국 간 실무 접촉 중단을 선언했다. 이를 출구 전략으로 본 정 장관 해석이 20분 만에 오판(誤判)으로 확인된 것이다.
국방부는 이날 오후 4 시 반쯤 '일본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일본 초계기 위협 비행을 규탄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불과 두 시간 만에 정반대 입장 발표를 한 셈이다. 처음엔 국방장관이 직접 발표하려다가 막판에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급을 낮췄다. 장관이 반나절도 안 돼서 말을 뒤집기가 면구스러웠을 것이다. 앞서 18일, 22일에도 일본의 근접 위협 비행이 있었다는 사실도 이때서야 공개했다.
이 장면을 보면서 지금 우리 안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남북 군사합의, 한·미 연합훈련 중단, 국방백서 '북한은 적(敵)' 삭제, 전작권 전환 등은 하나하나가 신중한 자세와 치밀한 능력으로 추진해야 하는 문제다. 과연 신중함과 능력을 갖춘 안보 당국인가. 국방차관은 "(DMZ) 초소가 철거된 오솔길이 머잖아 평화 순례길이 될 것"이라고 했다. 냉철한 국방 책임자가 아니라 무슨 시인(詩人) 같다. 우호국이었던 나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까맣게 모르는 국방부가 우리 안보를 가장 위협해 온 상대의 진의를 얼마나 자신 있게 읽었기에 섣부른 평화 타령을 하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