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돼 이제 재판에서 유·무죄가 가려지게 됐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는 과정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엔 의문이 적지 않다. 7개월 넘게 계속된 검찰 수사에서 전·현직 판사를 100명 가까이 소환 조사하고 대법원의 컴퓨터를 샅샅이 뒤졌다. 그렇게 검찰이 내놓은 많은 문건은 거의 대부분 대법원의 정책이나 절차에 관련된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이거나, 강제징용 재판과 관련해 변호사를 따로 만난 것은 부적절하고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부적절한 행위와 범죄는 다른 문제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거의 전부가 '직권남용'이다. 피의자에 대한 마구잡이 '직권남용' 적용은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그의 재임 기간 중 논란이 된 판결은 모두 불신과 의심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좌파 단체들은 전교조 법외노조 재판 등 각종 시국 사건을 문제 삼을 태세다. 특히 통진당 세력이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집요하게 요구해왔다. 이들은 앞으로 이석기 전 의원을 석방하라는 시위를 벌일 것이다.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3차례의 자체 조사에서 사실무근으로 정리됐다.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서도 김명수 대법원장이 구성한 조사팀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김 대법원장은 사실상 대통령 뜻에 맞춰 문제를 검찰로 넘겼다. 김 대법원장은 24일 출근길에 "참담하고 부끄럽다"며 머리를 숙여 사과했다. '악어의 눈물'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