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1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한 김정은과의 만남을 고대한다"며 2차 미·북 정상회담 의지를 재확인했다. 전날 "언제든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화답한 것이다. 이에 따라 2차 미·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미·북 간 고위급 또는 실무 회담이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미 조야(朝野)에선 이번 신년사를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을 선언한 김정은과의 2차 정상회담은 오히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만 인정하는 수순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北 핵보유국 인정할지 선택에 직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이 북한은 더 이상 핵 개발·실험·이전 등을 하지 않을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과 언제든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는 미 PBS 보도를 인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인용한 김정은 발언은 핵무기의 추가 제조·실험·사용·전파를 금지하는 핵보유국들의 이른바 '4불(不)' 원칙이다. 김정은은 핵 보유를 전제로 '핵 비확산'을 강조하는 핵보유국들의 논리를 갖다 쓴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보유 핵 폐기'가 빠진 김정은의 4불 입장을 거론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향후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선까지 후퇴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NYT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의) 출발지로 돌아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내려야 할 결정은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히 없앤다는 '북한 핵무기 제로' 목표를 철회하느냐 여부"라고 했다. '완전한 비핵화' 대신 북한을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느냐 마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이어 "(북핵 제로 목표의 철회는) 북한을 파키스탄·인도·이스라엘처럼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껏 역대 어떤 대통령들도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았던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본지에 "김정은 신년사는 북한을 사실상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일 경우, 트럼프와 협상을 할 용의가 있다는 얘기"라고 했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벌이려 한다는 것이다.
◇고위급·실무 회담 재추진될 듯
미·북 협상에 정통한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새해 들어 미·북 정상이 대화 의지를 밝히긴 했지만, 실제 미·북 간에 달라진 상황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에서 김정은이 돌발 발언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신년사에 관심이 집중됐을 뿐"이라며 "결국 2차 미·북 정상회담 개최의 가늠자는 고위급 또는 실무 회담 개최 여부"라고 했다.
북한을 향한 미국의 불신이 깊은 만큼 양국이 주고받을 비핵화 조치와 그 상응 조치를 사전에 논의하는 자리가 성사되지 않을 경우, 정상회담도 지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작년 11월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간 고위급 회담은 하루 전 돌연 취소된 이후 두 달간 진전이 없는 상태다.
다만 새해 두 정상이 정상회담 의지를 재확인한 만큼 조만간 고위급·실무 회담은 본격적으로 재추진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강경화 외교장관도 지난 1일 "2차 북·미 회담을 위한 준비 차원의 접촉·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비핵화와 상응 조치에 관한 미·북 간 입장 차가 워낙 커 사전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날 트위터에서 김정은이 신년사를 통해 주장했던 제재 완화 등에 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아 북한 요구에 바로 응할 뜻이 없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북한으로선 핵 동결과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정상 간 담판을 희망한다"며 "고위급·실무 회담을 열더라도 비핵화 논의 대신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로지스틱스(수송 지원) 관련 논의만 하길 원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