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前사무관 '유튜브 폭로'
동영상 폭로, 얼굴공개, 경쾌한 분위기
"내용보다 방식에 더 놀랐다"

청와대가 민간기업 KT&G 사장 인사(人事)에 개입하고, 일종의 ‘국가 재정 분식 회계’를 시도했다는 신재민(33)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는 충격적 내용이었다. 내용도 그렇지만, ‘방식’도 유례가 드문 경우다.

지난 7월 기획재정부를 그만 둔 신 전 사무관의 폭로는 특이했다. ①유튜브에 직접 촬영·편집한 영상을 게재했다. 언론에 제보하는 종전의 관례를 벗어난 것이다. 그는 오히려 언론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했다. ②얼굴과 실명(實名), 소속부서(국유재산과)와 담당업무를 모두 밝혔다. 심지어 "기재부 재직 시절 언론에 제보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며 과거 제보까지 공개했다. ③12분 안팎의 폭로영상은 시종 경쾌한 분위기였다. 그는 "학원 강의를 하려면 그만둔 이유를 밝혀야만 했다. 한마디로 먹고 살려고 (폭로)하는 것"이라면서 웃었다. 농담이 아니었다. 폭로 영상 마지막 부분에 신 전 사무관은 후원계좌를 띄우고, 자신이 강의하기로 했던 교육기업의 광고까지 삽입했다.

유튜브를 통해 청와대의 KT&G 사장 인사 개입 의혹을 폭로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폭로가 나오자 공직사회도 놀랐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사무관 이모(32)씨는 "유튜브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관가(官街)에 소문이 쫙 퍼졌다"면서 "기재부 젊은 사무관이 ‘유튜버’로 등장해서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한 것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앙부처 공무원 신모(28)씨는 "동료들 사이에서 (정권을 건드렸으니)신 전 사무관이 학원강사로도 활동하기 힘들 것이라는 안타까운 시각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신 전 사무관 본인에게는 집권 2년차 정권을 건드리는 데 대한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공무원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도 "처벌받아야 한다면 달게 받겠지만, 나는 비리 등 잘못은 저지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는 기존의 '제보자'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당장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의혹을 폭로한 김태우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도 처음에는 '익명의 제보'로 시작했다. 그의 실명은 폭로 이후 청와대 대변인실이 밝힌 것이다. 실명이 폭로된 이후에도 김태우 수사관은 제보의 통로로 기성 언론을 택하고 언론과 대면할 때는 모자이크로 얼굴을 가리거나 뒤통수만을 촬영했다 ③인터뷰에서도 조심스럽고 비장한 분위기였다.

청와대 특별감찰반 파문의 발단이 된 김태우 서울중앙지검 수사관과 TV조선의 지난 28일 인터뷰 장면. 신원 노출을 막기 위해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했다.

유튜브 폭로의 등장에 대중은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폭로 영상이 게재된 지 사흘 만인 1일 오후 3시 현재 조회수는 13만8000회를 넘어섰다. 영상 댓글에는 "유튜브 폭로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정부에서 유튜브를 규제하려는 이유를 이제 알았다" "유튜브로 당당하게 영상 찍는 게 오히려 신변보호에 도움될 것"이라는 댓글이 붙었다.

연세대 법학대학원에 재학하는 황정희(27)씨 얘기다. "유튜브 폭로 이후 방학인데도 학교 동기 단톡방(단체 대화방)에 난리가 났어요. 한 동기가 ‘명색이 전직 기재부 간부인데 폭로방식이 저급하다’고 평가하면, 다른 동기가 ‘먹고 살려고 폭로한다는 게 더 솔직한 것 아니냐’고 반박하는 식이에요. 문재인 정부가 신재민씨를 ‘공무원법 위반’으로 처벌할지 궁금합니다."

신재민 사무관은 폭로 영상 마지막 부분에 후원계좌를 띄우고 자신이 강의하기로 했던 교육기업의 광고 등을 삽입했다.

그의 유튜브 계정 ‘구독자’는 1일 현재 1만1000여명에 달한다. 구독자는 앞으로도 신 전 사무관이 올리는 동영상을 보겠다는 의미다. 그는 청와대의 민간기업 인사(人事) 개입 외에도 "앞으로 10개의 영상을 추가로 공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신 전 사무관이 젊은 만큼, 폭로의 수단으로 젊은이들에게 익숙한 유튜브를 택한 듯하다"며 "얼굴을 공개하고 이야기를 풀어가니, 대중이 더 진실되게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대미문의 ‘유튜브 폭로’에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언론계다. 익명을 요구한 중앙일간지 기자 박모(36)씨는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제보자를 보호해주던 시절은 옛말"이라면서 "스스로 1인 미디어가 되어 대중에게 호소하는 ‘미래의 내부고발’ 예고편을 본 기분"이라고 밝혔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소셜미디어 시대에 전통적인 언론권력이 해체되고 있다는 징후"라고 분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