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범률 45%, 마약보다 중독성 강한 음주운전
상습 음주운전자 평균 5.97회 '음주 질주'
윤창호법 도입 이후 일주일 간 음주운전 사고 245건
"음주운전에도 '전자발찌(시동잠금장치)' 도입해야" 목소리

지난 26일 새벽 4시 20분 서울 강남구 학동사거리 부근에서 ‘이상(異常)주행’을 하는 벤츠가 발견됐다. 벤츠는 불법 좌회전을 하다 마주 오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이 충돌로 상대방 차량 탑승자 2명이 다쳤지만, 벤츠는 멈추지 않았다. 중앙선을 넘어 150m가량을 질주했다. 목격자들이 벤츠를 가로막았다. 차량 안쪽에서 술 냄새가 진동했다. 운전자는 뮤지컬배우 손승원(28).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취소 수준인 0.206%로 나타났다. 그는 세 건의 음주운전 전과(前科)가 있었다.

손승원은 지난 9월에도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석 달 만에 무면허 상태로 음주운전 뺑소니를 저지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음주운전의 유혹은 마약보다 강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과장이 아니다. 30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음주운전 재범(再犯)률은 44.7%로 나타났다. 같은 해 대검찰청이 밝힌 마약범죄 재범률은 36.3%. 경찰 관계자는 "마약보다 음주운전 중독성이 더 강하다"며 "마약은 누구나 ‘중(重)범죄’라고 인식하지만, 음주운전은 ‘그럴 수도 있지’라고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에 ‘범죄 유혹’의 문턱이 낮다"고 말했다.

◇"빨간 줄 그어봤더니 별거 없더라" 치솟은 음주운전 재범률
음주운전 재범률은 해마다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2008년 36.5%→2017년 44.7%). 재범률이 치솟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전체 음주운전의 감소에 있다. 전체적으로 음주 운전자가 감소하는 추세인데, 습관적으로 음주운전을 반복하는 이들은 그대로인 까닭이다.

실제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상습 운전자들의 평균 음주주행 횟수는 5.97회로 나타났다. 10번 이상 음주운전을 해봤다는 운전자도 29.6%나 됐다. ‘50회 이상 음주운전 해봤다’는 응답도 있었다.

그렇다면 상습 음주 운전자들은 어째서 줄지 않을까. 경찰청 교통안전과 관계자는 "음주운전에는 마약과 같은 ‘범죄의 쾌감’이 있다"면서 "음주운전으로 징역을 살아도 ‘빨간 줄이 그어져 봤지만 별거 아니다’면서 반복하는 사례도 봤다"고 말했다.

단속망이 허술한 것도 이유로 꼽힌다. 도로교통공단 '상습 교통법규 위반자 관리방안 연구'에 따르면 "음주운전 경험이 있지만, 여태껏 단 한 번도 적발된 적 없다"는 응답이 83.3%에 달했다.

도로교통공단은 "3년간 음주운전 경험이 있는 응답자가 16.5%인데, 음주운전 경험이 있는 사람 중 13.9%만이 음주운전으로 단속된다"며 "위반 횟수로 환산하면 전체 음주운전 중 3.8%만 단속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했다. 경찰 측은 "음주운전 단속강도가 점차로 강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단속 인력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승재현(48)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얘기다. "운전자가 첫 음주운전에서 걸리지 않으면 ‘어 괜찮은데?’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음주운전은 초범보다 재범이, 재범보다 삼범의 혈중 알코올농도가 높은 경향이 있어요. 반복적으로 더 강도 높은 음주운전을 하다가 결국 누군가 치어 죽이거나, 스스로 죽어야 끝나는 범죄입니다. 마약보다 더한 중독성을 지닌 것이 음주운전입니다."

◇음주운전에도 '전자발찌(시동잠금장치)' 도입 목소리
지난 18일부터 음주 운전으로 사람을 숨지게 하면 최소 3년 징역형, 최고 무기징역을 받도록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특정 범죄 가중 처벌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또한 내년 6월 25일부터는 '제2의 윤창호법'으로 불리는 개정 도로교통법이 적용된다. 이 법은 면허취소 기준을 기존 혈중알코올농도 0.1%에서 0.08%로 강화했고, 면허 정지 기준도 0.03%로 낮췄다. 또 음주 운전 2회 이상 적발 시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그러나 "‘음주운전 중독자’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다. 경찰청에 따르면 윤창호법 시행 첫날인 이달 18일부터 24일까지 전국에서 음주운전 사고 245건이 발생(2명 사망·369명 부상)했다. 이는 시행 전 일주일(12월 11~17일)에 일어난 음주운전 사고 285건보단 다소 줄어든 수치지만, 확연한 감소세는 아니라는 것이 경찰 안팎의 평가다.

승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음주단속에 걸리면 재수가 없는 것’ ‘안 걸리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정부가 나서 ‘음주운전은 살인·강도·방화 같은 중범죄’라는 경고음을 울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킨 ‘공인’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종천(50)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 이용주(50) 민주평화당 의원, 뮤지컬 제작자 황민(45), 뮤지컬배우 손승원(28).

음주운전 중독자들은 차량을 몰 수 없도록 하는 ‘제도적 안전벨트’를 마련하자는 지적도 있다. 도로교통공단의 '상습 교통법규 위반자 관리방안 연구'는 "성범죄자 재범방지를 위해 ‘전자발찌’를 채우는 것처럼, 교통법규위반자에 대해 음주시동잠금장치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음주운전 중독자들조차 "나를 막아달라"면서 음주시동잠금장치 도입에 동의하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이 반복적 음주운전자 10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70.1%가 "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긍정 평가했다. 일단 취하면 스스로 통제할 수 없으니, 운전대를 잡을 수 없도록 국가가 강제해달라는 요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