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선 최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20대, 영남, 자영업자 이탈이 결정적이라며 '이영자 현상'이라는 말이 나온다. 실제 29일 여론조사 업체 리얼미터 조사에서 부산·울산·경남(부울경·PK) 지역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37.6%를 기록했다. 9월 넷째 주엔 62.7%였는데 2개월 만에 25%p 넘게 빠졌다. 같은 기간 전국 지지율은 65.3%에서 48.8%로 17%p가량 떨어졌다. PK의 지지층 이탈 속도가 훨씬 빠른 것이다. PK는 정부 초반기 문 대통령 지지층을 떠받드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대구·경북(34.8%) 지역과의 '지지율 동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PK 지역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이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은 PK에서 압승했다. 그러나 지난 28일 부산에서 만난 시민들은 "대통령에게 섭섭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택시 운전을 하는 남한노(58)씨는 "최저임금 올라 식당이 일찍 닫고, 밤에 손님이 없어 돈을 못 버는데 어떻게 대통령을 지지하겠느냐"며 "작년엔 밤에 몇 시간 돌아도 사납금은 채웠는데 요즘은 13~14시간씩 일해도 못 채우는 날이 생긴다"고 했다.

텅빈 부산의 패션 거리 광복로 - 29일 퇴근 시간을 넘긴 부산 중구 광복로 패션 거리가 텅 비어 있다. 이날 발표된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37.6%를 기록했다.

자갈치시장의 부산어패류조합에서 장사가 잘되느냐고 묻자 "완전 엉망"이라며 "CCTV(폐쇄회로 TV)만 봐도 딱 안다"고 했다. 96개 CCTV 화면 중 10여개에서만 손님이 드문드문 보였다. 조합 관계자는 "손님보다 주인이 더 많다. 원래 여기가 자리 쟁탈전 벌이던 곳인데 지금 250개 좌판 중에 20개가 비었다. IMF도 넘겼는데 30년 동안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자갈치시장을 찾았을 때 직접 안내를 했다는 조합장 김종진(56)씨는 "대통령이 제발 한 번만 다시 와서 상황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올라서 일당을 하루 13만~14만원을 줘야 하니까 사람을 줄이거나 안 쓴다"며 "탁상 행정 하는 공무원들은 돈만 많이 주라고 하고 장사 자체가 안 되면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다른 횟집 사장은 "어제 8만7000원 팔고 오늘은 마수(첫 손님)도 못했다"며 "내가 문재인 (대통령) 찍었으니 환장할 노릇"이라고 했다.

PK 지역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지역 경기 악화'라고들 말한다. 지난 9일 나온 한국갤럽의 '경제 전망' 조사에서 PK 지역은 응답자 57%가 '향후 1년 경기가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또 40%가 '내 살림살이도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향후 1년 경기 전망은 부정 답변이 대구·경북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고, 살림살이에 대한 부정적 전망은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조선·자동차 등 지역 핵심 산업도 어렵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광주형 일자리'가 주목받고 조선·자동차 산업도 군산 등 호남 지역 어려움만 부각돼 있다"고 했다. 여기에 이낙연 총리나 임종석 비서실장, 문무일 검찰총장, 민갑룡 경찰청장처럼 호남 출신이 중용되면서 PK는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서면에서 만난 김흥기(57)씨는 "내가 대통령의 경남고 후배라서 딸하고 같이 문재인 찍었다"며 "그런데 나아지는 건 없고 자식 결혼시키려고 보니까 집값만 평당 1000만원이 넘었더라"고 했다.

부산대 대학원생 이모(29)씨는 "그래도 아직은 주변에 문 대통령 지지자가 더 많다"고 했다. 서면에서 향수 가게를 하는 박성희(40)씨는 "아직 지지하지만 요즘에 매출이 60% 넘게 줄어 실망스럽다는 생각도 조금씩 든다"고 했다. 꽃집을 하는 조모(60)씨는 "대통령이 애쓴다고 생각은 하는데 북한에만 너무 집중하는 것 같다. 우선 백성이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부산의 한 공공 기관에 다니는 정모(39)씨는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사람은 아직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 중엔 마음이 바뀌었다는 사람도 많이 봤다"고 했다.

민주당은 다음 달 8일 시장과 국회의원 등 부산 지역 선출직 공무원 150여명이 총집결하는 '선출직 공직자 대회'를 열 계획이다. 전재수 부산시당위원장은 "이제 성과로 어필해야 한다는 점을 결의하는 자리"라고 했다. 부산 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최근 지지율 하락세를 보면 중도층까지 돌아서는 분위기라 위기감이 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