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은 지난 26일 사상 첫 남북 공동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등록이라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1983년 민속 씨름 등장 이후 한때 국민 스포츠로 인기를 누렸던 씨름은 이제 언제 어디서 대회가 열리는지, 천하장사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한 씨름인은 "일본의 민속 스포츠인 스모(相撲)의 부활 사례가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팬들에게 다가가야 산다
지난 9월 도쿄 료고쿠 스모전용경기장에서 열린 가을 대회(秋場所)에는 경기가 열린 보름 내내 1만1100개의 좌석이 꽉 찼다. 11월 후쿠오카 대회 역시 전 경기 매진으로 집계되면, 지난해 1996년 이후 21년 만에 6차례 전국대회 입장권이 모두 팔린 데 이어 올해 2년 연속 '완판(完販)' 기록을 이어간다.
스모는 1989년부터 1997년 여름 대회까지 666일 연속 '만원(滿員)' 기록을 이어가는 등 일본 최고 인기 스포츠였다. 하지만 2003년 최고 스타 다카노하나가 은퇴한 이후 인기가 서서히 줄었고, 2011년 4월 현역 선수 21명과 전직 선수 2명이 유죄 판결을 받은 승부 조작 사건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이후 팬들은 '입장료 무료 선언'에도 발길을 끊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일본 스모계가 고민 끝에 얻어낸 해답은 선수와 허그, 어린이 스모 체험 등 '팬 프렌들리(친화 정책)'와 '글로벌화'였다. 일본스모협회는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매일 10개 이상 사진과 글을 올린다. 대회뿐 아니라 선수들 일상 사진까지 올려 팬들과 친숙해지도록 했다. 대회가 없는 짝수 달에는 전국 소도시를 돌면서 이벤트 행사를 연다. 선수들도 팬과의 스킨십에 적극적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하쿠호 같은 대스타가 직접 재해 현장으로 달려가 밥을 날랐다. 고령 관중이 대부분인 씨름과는 달리 최근 스모장엔 기모노 차림의 젊은 여성 팬들이 몰려든다. '스조(스모 + 조시·女性)'로 불리는 이들은 소셜미디어에 포스팅 하면서 스모 홍보 사절을 자처한다.
◇일본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매김
최근 스모 경기를 보면 외국인 관광객도 상당수 눈에 띈다. 스모협회는 매 대회 관중의 10% 이상이 외국 관광객인 것으로 추산한다. 일본의 전통을 느끼고 싶은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체험 코스로 자리 잡도록 관광업계까지 나섰다. 스모협회가 영문 홈페이지를 별도로 운영하고, 선수 소개 영문 팸플릿을 찍는 것도 외국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해외로 전파를 송출하는 NHK 역시 대회를 앞두고 30분짜리 영어 예고 프로그램을 내보내며, 대회 생중계 땐 영어로 해설하는 중계진을 따로 둔다. 스페인 축구스타 페르난도 토레스를 비롯해 외국인 유명 인사들이 일본에 들르면 스모 관람 인증샷을 올리는 게 '필수'가 됐다. 스모는 선수 문호도 넓혔다. 1980년대만 해도 4개국 5명이었던 외국 선수가 지금은 12개국 61명에 이른다. 하와이, 몽골뿐 아니라 유럽 선수들도 받아들였다. 현재 스모 최고 스타는 몽골 출신 하쿠호다. 지난해엔 기세노사토가 19년 만에 일본인 요코즈나(씨름의 천하장사)에 등극해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씨름도 재건 프로젝트 추진 중
씨름협회는 2016년부터 천하장사 출신인 이준희 경기운영본부장이 중심이 된 TF팀 주도 아래 '씨름 재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2020년 씨름의 프로화, 전용 경기장 건설 등이 골자다. 정인길 씨름발전기획단장은 "내년 9월 6~7개 팀으로 연간 50~100경기 치르는 프로대회를 열고 승강제를 도입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한 씨름인은 "씨름이 옛 인기를 되찾기 위해선 팬들 속으로 더 친숙하게 파고드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한씨름협회 트위터의 마지막 게시물 등록은 5년 전이고 페이스북은 9개월 전이다. 박승한 한국씨름연구소장은 "스모를 보면 제의를 드리는 것처럼 숭고한 느낌을 갖는다"며 "씨름 역시 옛 전통을 되살리면서 더 고급스럽게 만들어야 팬들이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