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만 보면 다들 그래요. '거인 같은 파이프오르간이 아기인 생황을 잡아먹는 거 아니야?'라고요. 전혀요. 의외로 궁합이 맞아서 깜짝 놀랐지요."
국악계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생황 연주자 김효영(44·숙명여대 대학원 객원교수)과 국내에서 으뜸가는 파이프오르간 연주자 신동일(44·연세대 교회음악과 부교수)이 오는 22일 서울 장충단로 경동교회에서 듀엣으로 공연한다. 제목이 '파이프(PIPE)'다. 연주장인 경동교회는 거장 김수근(1931~1986) 설계로 1981년 지어진 건물. 한쪽 벽면을 차지한 파이프오르간은 이 교회 명물로 꼽힌다.
16일 이곳에선 100여 명이 한꺼번에 연주하는 듯한 오케스트라 음이 쏟아졌다. 거기에 맑고 부드러운 생황의 울음이 섞여 들었다. 신동일이 말했다. "생황 소리가 꼭 하모니카 같죠? 아코디언 같고요. 한데 표현력은 비교도 안 될 만큼 다채롭고, 음량도 큽니다." 두 손으로 생황을 감싸쥔 채 숨을 불어넣던 김효영이 덧붙였다. "생황은 몸집으로만 따지면 돌멩이 들고 골리앗에게 대적하는 다윗에 불과해요. 무게는 2㎏, 안으면 품에 쏙 들어오죠."
이들은 1년 전 러시아 우랄산맥 근처 페름의 필하모니홀에서 처음 만났다. "러시아에서 한국 전통악기 주자를 모시고 와달라 하길래 주저 없이 김효영씨를 떠올렸어요." 열세 살 때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신부의 오르간 연주를 본 뒤 "한 사람이 오케스트라 소리를 빚어내는 듯한 마력에 흠뻑 빠졌다"는 신동일은 2006년 프랑스 오르간 콩쿠르 '그랑 프리 드 샤르트르'에서 대상을 받았다.
김효영의 전공은 피리였다. 하지만 2002년 생황을 접하고 "신비로운 소리에 매료돼 방에서 생황만 불었다"고 했다. 2009년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 '슈'를 협연한 중국 연주자 우웨이에게 또 한 번 반했다. "37관짜리 생황을 그때 처음 봤어요. 전통 악기인 17관 생황보다 음이 많아서 기교가 복잡해졌지만 그만큼 음역이 넓어지고 음량도 커졌죠."
박으로 만든 바가지에 길이가 다른 대나무 관을 여러 개 꽂아 만든 생황은 대나무 관 속에 들어 있는 금속제 떨림판을 울려 소리를 낸다. 국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두 가지 이상의 음을 낼 수 있다. 손가락으로 지공(구멍)을 막는 개수만큼 동시에 음이 나는 구조. '바람이 만들어내는 소리'란 뜻에서 파이프오르간과 원리가 같다. 그래서 생황의 영어 이름도 '마우스(mouth) 오르간'이다. "더 재밌는 건 오르간에서 높은음을 내는 관의 크기가 생황과 비슷할 만큼 작고 좁다는 거예요. 심장을 쿵쿵 울리는 저음부를 오르간이 낸다면, 생황은 '얼굴마담'인 고음의 선율을 빚어내죠."
이번 공연을 위해 이홍석·최명훈·이수연 등 작곡가들에게 생황과 오르간을 위한 신작을 의뢰했다. '가을에 쓸쓸한 자…' '로코코 시나위' 등 여섯 곡을 선보인다. "한 무대에서 두 개의 오케스트라를 만나는 기분이랄까. 오르간과 생황은 이름도 생김새도 다르지만, '바람의 악기'이고 토해내는 음색도 다른 듯 닮았죠." 둘은 "나만의 연주가 우리의 연주로 색깔을 입혀 나가는 과정이 재미있게 펼쳐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PIPE=22일 오후 7시 30분 경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