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밤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에서 옛 수산시장(구시장) 철거를 반대하는 상인들이 신시장으로 수산물 출하 차량 출입로를 막고서 농성을 벌여 수협 측과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날 농성으로 수산물을 실은 트럭들이 수산시장에 들어가지 못하면, 다음 날 수도권에 수산물 공급이 끊기는 ‘수산물 대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도 양측 갈등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수협은 구시장에 전기와 수도 공급을 중단했다. 구시장 상인들이 대법원 판결에 따른 강제철거(명도집행)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협 측은 마지막 수단으로 단전·단수 조치를 해 상인들의 자진 철거를 유도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구시장 상인들은 이날 촛불을 켜놓고 어둠 속에서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에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수족관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서 활어(活魚)가 폐사하기도 했다.
◇구시장 상인, 도매차량 진입 못하게 가로막아
수협의 단전·단수에 반발한 구시장 상인 50여명은 이날 오전 9시 30분쯤부터 구시장과 신시장 사이에 있는 폭 35m쯤 되는 도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산소공급이 끊겨 물고기들 다 죽는다. 심각한 영업방해"라고 항의했고, 일부 상인들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저녁이 되자 구시장 상인 70여명은 400m쯤 왼쪽으로 이동해 신시장 차량 출입로를 가로막고 농성 중이다. 차량 출입을 막기 위해 민주노련(민주노점상전국연합)은 트럭 5대를 동원했다. 서울 동작서는 민노련 소속 차량을 견인해가려다 구시장 상인들의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구시장 상인의 농성은 결국 자정을 넘겨 6일 새벽 1시쯤에야 끝났다.
이 때문에 이튿날 새벽 열리는 도매시장에 수산물을 공급하려고 전국에서 올라온 출하차량이 수산시장에 못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날 밤 9시쯤 수협 측은 수산시장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트럭에서 수산물을 인력과 지게차 등을 이용해 경매장으로 옮겼다.
도매시장에서 구시장 상인과 수협 측의 대치는 이날 오후 7시 45분쯤 출하차량이 수산시장으로 서서히 진입하면서 시작됐다. 구시장 상인 5~6명이 트럭 바퀴 30㎝ 앞에 드러누웠다. 수협에서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상인들을 끌어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다른 상인들은 바닥에 은박지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도로를 점거했다. 이날 오후 9시 20분쯤엔 출하차량 4대가 구시장과 신시장 사이 통로를 이용해 도매시장으로 접근하려다 상인들이 가로막아 진입에 실패했다.
농성 중인 구시장 한 상인은 "우리의 생명인 전기와 수도를 끊어버리고 내 생명처럼 아끼는 물건(수산물)이 폐사하고 있다."며 "이런 사태를 몰고 온 수협과 박원순 서울시장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나는 여기서 죽겠다"고 외쳤다. 대치 중이던 수협 측 용역 직원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고 있네. XX새끼야"라고 외치자, 상인들은 일제히 "나가라"고 소리쳤다. 이런 과정에서 양측은 물리적 충돌까지 빚었고, 구시장 상인 한 명이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노량진수산시장, 수도권 수산물 공급량 절반 가까이 차지
수협 측에 따르면 노량진수산시장은 수도권 수산물 공급량의 45%를 책임지고 있다. 수협 관계자는 "오후 8시쯤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수산물을 실은 출하차량 300~400대가 들어와 수산물을 내려 놓으면, 새벽에 경매를 거쳐 수도권 곳곳으로 팔려나간다"며 "구시장 상인의 방해로 경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내일 수도권에 수산물 대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9시 40분쯤 노량진수산시장 내 도매시장 출구 쪽에서 농성하던 구시장 상인들은 자진 해산했다. 밤 11시 현재 입구는 여전히 구시장 상인들로 막혀 있지만, 출하차량은 출구를 통해 드나들고 있다.
고등어 도매상인 김모(22)씨는 "도매시장 입구 쪽으로 진입하려던 차량은 구시장 상인에 막혀 못 들어왔다. 어떤 도매상은 거래하는 차량이 한 대도 들어오지 못했다. 고등어도 들어오는 시간이 평소보다 많이 늦어졌다"고 말했다. 노량진에서 도매로 구입한 수산물을 싣고 인천 연안부두 중도매상으로 수송하는 용달업자 김모(59)씨는 "입구에서 막혀 2시간만에 겨우 시장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차량에서 수산물을 내리던 임모(64)씨는 "하역 작업이 3~4시간씩 지체됐다"며 "경매시간을 못 맞추면 상인들은 큰 손해가 난다. 1만원짜리 생선이 6000원에 팔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선 새벽 1시부터 경매가 실시된다.
수협은 지난 2015년 10월 구시장 왼편에 신시장을 지었다. 지어진 지 48년 된 구시장 건물들이 낡은데다 낙석과 추락사고, 주차장 붕괴사고 등의 위험이 점차 커지자 수협은 구시장을 허물고, 이 부지에 해양수산 테마파크 조성키로 했다. 그러나 일부 상인들이 "좌판대 면적은 2평에서 1.5평으로 좁아졌는데 임대료는 높아졌다"며 반대했다. 2016년 3월 신시장이 정식으로 개장했지만, 전체 상인 654명 가운데 41%, 270여명이 신시장으로의 이전을 반대한 채 구시장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