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지음 | 한겨례출판사 | 284쪽 | 1만300원

"슬퍼할 필요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아침의 피아노’는 미학자이자 철학자인 김진영의 첫 산문집이자 유고집이다. 저가 임종 3일 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썼던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의 일기 234편을 담았다.

하지만 단순한 투병 일기는 아니다. 저자의 문학과 미학, 철학에 대한 성취의 노트이자, 암 선고 이후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에 시선을 쏟은 정직한 기록이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삶을 노학자만이 그려낼 수 있는 품위로 적어 내려간 마음 따뜻한 산문이다.

생전에 "어려운 사상가와 철학을 알기 위해 배우는 교양을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 안에서 나오는 사유를 위한 공부를 귀히 여기라"고 당부했던 저자의 말처럼, 책은 그 자신과 세상과 타자를 사유하며 꼼꼼히 읽어낸 문장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책엔 저자만이 낚을 수 있었던 빛나는 아포리즘들이 가득하다. 프루스트의 말년을 얘기하며 "그가 침대 방에서 살아간 말년의 삶은 고적하고 조용한 삶이 아니었다. 그건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삶이었다. 침대 방에서 프루스트는 편안하게 누워 있지 않았다. 그는 매초가 아까워서 사방으로 뛰어다녔을 것이다. (…) 독자는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마지막 책은 100m 달리기 경주를 하는 육상선수의 필치와 문장으로 가득하다"고 말한 부분은 방 안의 존재에 대한 고정된 시선을 깬 발견이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저자의 진한 시선도 느낄 수 있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깊다고,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러니 바람아 씽씽 불라고……" 저자는 천상병 시인에 관해 썼던 ‘한겨레’ 칼럼을 이야기하며, 생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실 이 책은 발간이 불투명했다. 역서 ‘애도 일기’와 공저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외에 저작이 없던 저자는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대학 강의를 하면서도 출간 제의엔 소극적이었다. 본인의 글에 대해서는 고집스럽고 완고했기 때문이다.

그는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닌,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했다. 병중의 기록도 마찬가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저자는 "나와 비슷하거나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의 위기에 처한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책을 썼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