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영국 테이트 갤러리에서 주관하는 최고 권위의 미술상인 터너상(賞)이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1965~ )에게 돌아갔다. 허스트는 1990년대 초부터 발표하는 작품마다 충격과 분노, 경악과 경탄을 동시에 불러일으켜 ‘미술계의 악동’이라고 불렸다. 이제는 나이도 많은 데다, 세계적으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으니 더 이상 악동이라고 부르기는 민망하나, ‘분리된 어머니와 자식’ 같은 작품은 지금 보아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허스트는 암소와 송아지를 반으로 갈라 포름알데히드로 방부 처리를 하고 이를 각각 네 개의 유리관에 넣어 전시했다. 살아 있는 듯 생생한 이 동물들을 바라본 뒤, 서로 마주한 유리관 사이로 걸어 들어가면 그 내장을 샅샅이 볼 수 있다. 물론 이토록 적나라한 동물의 사체가 미술사에 처음 나타난 건 아니었다.
바로 지난 회, 본 지면에서 다뤘던 17세기 네덜란드의 푸줏간 장면에서도 알 수 있듯, 갓 도살해 갈라 놓은 가축은 흥미진진한 볼거리일 뿐 아니라, 삶과 죽음 사이의 비좁은 거리를 되새기게 해주는 종교적인 주제였다. 게다가 처참하게 잘려나간 몸에 어머니와 자식이라는 관계가 더해지면, 서양에서는 마땅히 예수의 희생과 성모 마리아의 슬픔을 상징하는 전통적인 이미지가 된다.
이토록 성스러운 주제를 충격적으로 옮긴 현대미술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작품은 터너상 수상 직후 일본으로 옮겨 전시됐다. 그러나 당시 일본은 광우병의 여파로 영국산 소고기는 수입이 안 된다며 이 작품의 통관을 불허했다. 미술관 측에서는 관계 당국에 이것이 고기가 아니라 미술임을 설명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전해진다. 과연 고기와 미술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