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5일 항소심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신 회장은 지난 2월 13일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추징금 70억원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지 234일 만에 석방됐다.
서울고법 형사8부(재판장 강승준)는 이날 국정농단 사건과 롯데 총수 일가 경영비리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신 회장에게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신 회장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면세점 특허권을 얻게 해달라고 청탁한 대가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뇌물로 준 혐의를 기소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면세점 특허 재취득이라는 중요 현안과 관련해 대통령의 직무집행의 대가로서 뇌물을 공여한 것"이라며 유죄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박 전 대통령이 단독 면담 자리에서 적극적으로 요구해 신 회장이 수동적으로 응했고, 이에 불응하면 직·간접적으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라며 "강요에 의해 의사결정이 다소 제한된 상황에서 뇌물공여죄를 엄히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재판부는 "실제로 공갈죄, 강요죄 피해자가 뇌물 공여죄로 기소돼 처벌받은 사례는 매우 드물다"며 "또 신 회장은 당시 대통령과 최씨의 관계, 대통령이 공익적 목적보다는 최씨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전혀 알지 못했고, 이후 면세점 직무집행에 있어 부당하게 롯데에 편의가 제공된 점이 없는 점 등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이날 롯데 일가(一家) 경영비리 사건과 관련해서는 1심보다 유죄로 판단된 혐의가 줄었다. 앞서 1심 때는 6개 혐의 중 2개가 유죄였지만, 항소심에서는 1개만 유죄로 인정됐다. 신 회장은 회삿돈을 빼돌려 가족들에게 500억여 원의 허위 급여를 지급하고, 계열사를 부당지원해 회사에 1200억여 원의 손실을 끼치는 등 1700억원대 재산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1심과 같이 신 회장이 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과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의 사실혼 배우자인 서미경씨 모녀에게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 특혜를 줘 회사에 774억원의 피해를 입힌 혐의는 유죄라고 했다. 그러나 1심에서 유죄로 판단됐던 서씨 딸 신유미씨에게 공짜 급여를 지급한 혐의를 무죄로 뒤집었다. 재판부는 "허위 급여가 지급된 것을 알면서도 제지하지 않고 용인한 것으로 볼 수 있을지언정, 신 회장이 (허위 급여 지급을 주도한) 신 명예회장과 공동으로 횡령을 모의했다거나, 범행에 가담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롯데피에스넷이나 롯데기공을 부당하게 지원해 471억원의 배임을 저질렀다는 혐의,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에게 공짜 급여를 준 혐의 모두 1심과 같이 무죄라고 판단했다.
이날 함께 재판을 받은 신 명예회장은 징역 3년, 벌금 30억원을 선고받았다. 1심 때 선고된 징역 4년, 벌금 35억원보다 감형됐다. 1심 때 무죄였던 증여세 포탈 혐의를 공소시효가 완성됐다며 면소(免訴) 판결로 바꾼 것 외에는 유·무죄 판단이 원심 그대로 유지됐다. 결과적으로 신 명예회장은 롯데시네마 배임 혐의와 신 이사장과 서씨에게 허위 급여를 지급한 혐의만 유죄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모든 양형을 두루 참작했을 때 신 명예회장에 대한 원심 판단은 다소 무겁다고 판단된다"며 "또 신 명예회장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법정구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짜 급여를 지급한 혐의의 공범으로 기소된 신동주 회장과 롯데시네마 배임 혐의 공범으로 기소된 서씨는 1심과 같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만 신 이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구속 상태였던 신 이사장은 이날 집행유예 선고로 석방됐다.
가족 경영비리 사건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황각규 롯데지주 사장과 소진세 롯데사회공헌위원장,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사장은 1심과 같이 무죄가 선고됐다.
신 회장은 이날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곧바로 석방됐다. 신 회장은 구치소에서 나오며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 말했다. 롯데그룹은 판결 직후 공식 입장을 통해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존중한다"며 "그간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했던 일들을 챙겨 나가는 한편,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