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물이 된 옛날 개그맨도 유튜브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2004년 KBS에 19기 공채 개그맨으로 입사해 활약한 김대범(39)씨의 말이다. 2006년 출연했던 개그콘서트 코너 '골목대장 마빡이'가 성공해 하루 수입이 5000만원에 달했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지만, 장동민·유세윤 등 쟁쟁했던 동기 개그맨들에 밀려 방송에서 그의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그랬던 그가 유튜브와 함께 화려하게 돌아왔다. 2013년 만든 유튜브 채널 '대범한TV'의 구독자 수는 15만3000명. 개그맨 특유의 재치를 담은 각종 상황극 영상이 호응을 얻고 있다. 김씨는 "8월 기준 광고 수익으로 월 3000달러(약 330만원) 이상을 벌었고, 한 달에 3건 정도 의뢰를 받아 별도의 광고 영상(건당 500만원)도 제작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3년 넘게 손해를 감수하며 유튜브에 투자한 결과,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온 것 같다"며 "이젠 유튜버가 내 직업"이라고 했다.
'한물' 갔다고 여겨졌던 개그맨부터 수십 년 경력의 연예인, 잘나가는 아이돌 가수까지 스타들이 '1인 크리에이터'에 도전하고 있다. 유튜브 공간에 자기 이름을 걸고 채널을 개설해 대중과 직접 소통하려는 시도다. 2013년 KBS 연예대상을 수상한 김준호(43)씨는 개콘 개그맨들의 좌장 격인 인물. 지난해 6월 유튜브 채널 '얼간 김준호'를 개설했고, 1년 만에 구독자 43만 명을 돌파했다. 금(金), 대왕 스테이크 등 이색 먹방과 인기 크리에이터들과의 협업 콘텐츠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김씨는 "유튜브는 자기 계발과 트레이닝을 하기에 최적의 플랫폼"이라고 했다.
잘나가는 아이돌 가수들도 유튜브 채널에서 무대 밖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인기 걸그룹 에프엑스 출신 엠버(26)는 약 1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스타 유튜버'다. 음악은 물론 국내외 친구들과 보내는 일상을 여과 없이 게재해 시청자와 소통하는데, 조회 수가 높을 땐 400만 회 이상을 기록한다. '악동뮤지션' 이수현(19)씨가 지난해 5월 개설한 유튜브 채널 '모찌피치'에는 그가 직접 기획한 뷰티 관련 영상이 올라온다. 이씨는 "제2의 꿈이 '뷰티 유튜버'가 되는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시청자들을 '복덩이'라고 부르는 그가 민낯으로 등장해 메이크업을 하는 모습이 인기를 얻어 1년 만에 구독자 100만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협업을 통해 유튜브에 진출한 사례들도 있다. 2000년대 후반 개그콘서트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던 개그우먼 강유미·안영미(35)씨는 2년 전 '미미채널'을 개설했다. '13년지기 두 친구가 마음 내키는 대로 논다'는 콘셉트로 먹방, 해외여행 같은 소소한 일상을 공유한다. 시나리오 없는 라이브 방송(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시청자들과 직접 소통하며 피드백을 주고받는 게 강점으로 꼽힌다. 역시 절친으로 알려진 송은이·김숙(45)의 '비보 TV'의 구독자 수는 25만 명. 이들이 올리는 개그 콘텐츠 중 일부는 인기를 얻어 '영수증(KBS)', '밥블레스유(올리브)' 같은 TV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되기도 했다. 김씨는 "우리가 질리지 않는 방송을 만들고 싶어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고 했다.
무명(無名)에 가까웠던 연예인들도 유튜브에서는 자신의 끼를 뽐내며 재평가를 받고 있다. 개그맨 손민수(28)·임라라(29) 커플이 운영하는 채널 '엔조이커플'은 지난해 2월 시작해 구독자 수가 76만 명에 달한다. 8주 만에 15㎏을 감량하는 다이어트 영상, 상황별 남자친구·여자친구 반응 등 연애 관련 콘텐츠 등을 주로 다룬다.
'성대모사의 신(神)'이라 불리는 안윤상(36)씨는 개콘 시절 단역에 그쳤지만, 유튜브 공간에선 남부럽지 않은 유명 인사다. 정치인, 영화배우 등 수백 명을 넘나드는 성대모사 능력이 유튜브에서 빛을 발했다. 그가 올리는 영상의 조회 수는 최고 200만 회가 넘는다.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 구분이 모호해지면서 연예인들의 유튜브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달 1일엔 개그맨 윤정수씨가 "다양한 신제품을 먼저 체험하고 대중과 소통하겠다"며 '얼리어답터'라는 이름의 채널을 개설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꽤 오랜 시간 연예인은 방송사나 제작사에 의해 선택받고 주어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그쳤지만, 상황이 180도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