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도 20년이 지났다. 이후 홍콩의 정세 변화에 대해 자세히 논할 수는 없겠지만, 더없이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영화다. 1997년 전후로 많은 홍콩 배우와 감독이 미국 할리우드로 떠났고 이후 제작되는 영화들은 중국 본토의 검열과 계도를 의식하며 위축되었다. 바바리코트, 성냥개비, 쌍권총이 등장하는 누아르 영화도 그립고 어두움과 불안, 사랑이 묘하게 공존하는 홍콩 특유의 멜로 영화도 그립다. 그 영화들에 등장하던 홍콩의 거리와 숱한 음식들까지도.
경남 김해로 가는 기차, 꾸벅꾸벅 졸던 나는 비슷한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 '첨밀밀'을 떠올렸고 주인공 장만옥과 여명이 훌훌 마시듯 먹던 훈툰을 이어 생각했다. 이 생각은 결국 부산 구포역 앞 산둥(山東)식 만두를 파는 '금용'으로 나를 데려갔다. 밖에서 보면 전형적인 중국 음식점처럼 보이지만 면 요리는 팔지 않는다. 대신 '금용'에는 뜨끈한 만두국밥이 있고 부드러운 물만두가 있고 육즙이 가득한 찐만두가 있다. 마늘이 듬뿍 올려진 오이절임이 찬으로 나오는데, 오이의 상큼한 맛과 향 덕분에 만두의 느끼함을 느낄 새가 없다.
명나라 작가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는 만두(饅頭)의 유래가 되는 설이 등장한다. 제갈량은 물의 신에게 사람의 머리를 제물로 바쳐야 하는 위기를 맞이하는데, 이때 꾀를 내어 사람 머리 대신 밀가루 반죽 속에 고기를 채워 물에 던졌다고 한다. 러시아의 펠메니, 이탈리아의 라비올리처럼 밀가루 반죽 안에 소를 넣어 조리하는 방식은 세계 곳곳에 보편적으로 있었다. 친한 이들끼리 둘러앉아 이것을 만드는 다정한 시간도, 다 빚은 후에 찜통에 넣고 기다리는 시간도 어디든 있었을 것이다.
"솥뚜껑을 열자 확, 끼치는 하얀 김 속에 서서히 떠오르는 그녀와 솥단지 안에 얌전히 들어앉은 만두꽃이 꿈인 듯 만개한지라, 이마가 뜨거운 만두를 집어내고 다시 새 만두를 올려놓으니, 내가 그녀의 손안에서 빚어졌을 때 다만 만두로서 순해져서는/ 가리라, 저 화엄의 거리로 지금 난 잘 익어가는 중이니."(최영숙, '옛날 손만두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