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엔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 수백 대가 몰렸지만 전기가 끊겨 주유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구형 수동식 주유기가 있는 일부 주유소에선 레버를 손으로 돌려가며 기름을 퍼올려 팔았다.
전기가 끊기자 통신도 끊기기 시작했다. 휴대폰 배터리가 소진돼 전화도, 인터넷도 할 수 없는 '배터리 난민'이 속출했다. 홋카이도 도청이 휴대폰 충전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밝히자, 사람이 너무 몰려 금세 접수가 끝났다. 삿포로에선 휴대전화 판매점이 간이 발전기를 설치해 두고 1명당 30분 한정으로 휴대전화를 충전해주기도 했다.
6일 새벽 진도 7의 강진(强震)이 강타한 홋카이도(北海道)는 시계를 100년 가까이 뒤로 돌려놓은 듯 암흑의 아날로그 세상으로 변했다. 이 지진으로 홋카이도 섬 전체가 12시간 이상 블랙아웃(대규모 정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진앙 근처의 도마토아쓰마(苫東厚眞) 석탄화력발전소가 충격을 받아 멈춘 것이 그 원인이었다.
대정전은 홋카이도 전체를 일대 혼란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TV 지진 속보를 볼 수 없게 된 시민들은 물과 생필품 확보에 나섰다. 삿포로의 한 대형 쇼핑센터 앞에는 오전 7시 45분부터 300여 명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다. 이날 일본인들의 트위터에는 삿포로 시내 대형 수퍼 앞에 수백 명이 줄을 선 모습, 모든 물건이 팔려 텅텅 빈 수퍼의 진열대 사진이 돌아다녔다. 정전 때문에 임시 휴업을 하는 편의점·쇼핑몰이 많아 식자재 부족 문제는 더 심해졌다. 삿포로시 도요히라구에 있는 전자제품 양판점 야마다전기 앞에도 개장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정전 때문에 휴대용 라디오, 스마트폰용 보조 배터리, 손전등을 찾아 온 것이다.
도로도 엉키기 시작했다. 오전 8시 30분 삿포로시 중심 오도리공원 근처 대로엔 신호등이 모두 꺼져 자동차들이 기어가듯 교차로에 진입했다. 삿포로 시내를 지나던 남성(80)은 "지금까지 지진으로 정전이 돼도 금세 복구하곤 했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삿포로시의 관문 신치토세 공항도 1988년 영업 시작 이래 처음으로 폐쇄됐다. 공항 건물 천장이 일부 붕괴되고 스프링클러 관에서 물이 새기도 했다. 예정돼 있던 국제선·국내선 비행기 200여 편이 모두 취소됐다.
홋카이도는 이날 오후 12만5000㎾ 규모의 스나가와 화력발전소와 수력발전소의 발전 재개 덕분에 삿포로시 등 14개 시 33만가구에 전력 공급이 재개됐지만 여전히 전기 공급이 되지 않는 곳이 더 많다.
인명 피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늘어나고 있다. 지진의 진앙과 가까운 아쓰마초(厚眞町)에서는 대규모의 산사태로 인한 토사가 인근 민가를 덮쳤다. 이로 인해 잠을 자고 있다가 그대로 매몰된 이들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89세의 한 남성은 요미우리신문에 "자고 있다가 흔들려서 밖으로 나왔는데, 옆집이 토사에 휩쓸려 도로로 밀려나 있었다"고 말했다. NHK는 11명이 사망하고, 약 32명이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일본은 유난히 많은 재해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서(西)일본을 휩쓴 폭우로 200명 넘게 사망했다. 9월 들어서는 25년 만에 가장 강한 태풍이 오사카 인근을 덮친 데 이어, 삿포로에서 초유의 진도 7 지진이 발생했다. 엄청난 규모의 재해(災害)가 잇달아 발생하자 일본인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본 경제와 관광을 대표하는 두 지역이 당장 회복하기 어려운 큰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