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 먹는 나라는 많지만 한국과 일본만큼 밥 문화가 비슷한 나라도 없지요.

김미리(이하 김): 지난여름 폭염 탓에 집에서 밥 해먹는 횟수가 확 줄었어요. 몇 달 전 산 10㎏짜리 쌀이 거의 그대로예요. 쌀벌레만 바글바글하더라고요. 인터넷에서 쌀벌레 퇴치법 찾아 마늘·고추 박아놓고 겨우겨우 먹고 있어요. 이제부턴 5㎏짜리 사려고요.

오누키(이하 오): 일본은 쌀 안 먹는 분위기가 너무 오래됐어요. 1980년대 제가 초등학생 때 이미 학교 급식으로 쌀밥 대신 빵이 나왔어요. 밥 먹기를 꺼려서요. 수요일 하루만 쌀밥을 줬는데 '쌀밥파'인 저는 그날만 기다렸어요. 요즘 우리 애 급식을 보면 쌀밥 나오는 빈도가 그때보다 잦아졌어요.

: 예전엔 밥 하면 '쌀밥'부터 떠올렸는데 요즘은 밥 자체의 개념이 흔들린달까요. 저만 봐도 샌드위치·샐러드로 한 끼 먹을 때가 이틀에 한두 번은 돼요. '쌀밥'에 대비해 '풀밥(샐러드밥)' '빵밥'이란 말이 나올지도요.

: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밥을 뜻하는 단어 'ごはん(御飯·고항)'이 원래는 쌀밥을 뜻했는데 지금은 식사를 의미해요. 밥과 관련해서 한국에서 경험한 에피소드 하나. 고깃집에서 고기 다 먹을 때쯤 아주머니가 "식사는 뭐로 하시겠어요?"하고 묻잖아요. 어쩜 그리 일본과 같은지. 일본에서도 고급 식당에서 고기나 요리를 먹고는 "식사는 어떤 게 좋으세요"라면서 어떤 밥을 먹을지 물어요. 한국과 일본은 그 풍경이 너무 당연한데 서양 사람들이 보면 이해가 안 될 거 같아요.

: 그렇죠. 이미 식사하고 있는데, 그전에 먹은 고기는 식사가 아니고 밥이 나와야 비로소 식사가 완성된다는 거니까(웃음). 요즘은 고기 먹고 공깃밥은 아예 안 시키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러면서 종업원한테 하는 말. "식사는 됐어요." 밥, 쌀밥, 식사란 단어가 뒤섞여 쓰여요.

: 일본 농림수산성 통계를 보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965년 111.7㎏, 1975년 88.0㎏, 1985년 74.6㎏, 1995년 67.8㎏으로 뚝뚝 떨어지더니 2011년 이후는 거의 50㎏대예요. 작년은 54.2㎏이고요.

: 한국 통계청 자료를 보니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1975년 123.6㎏, 1985년 128.1㎏, 1995년 106.5㎏, 2005년 80.7㎏으로 줄었어요. 지난핸 61.8㎏으로 역대 가장 적었고요. 일본은 이미 1960년대부터 감소세였고, 한국은 1990년대부터 감소했네요. 절대량은 한국이 일본보다는 7㎏ 정도 많고요. 일본이 소식(小食)해서 일까요.

: 그런데 일본은 감소세가 거의 멈췄어요. 오히려 간간이 쌀 소비량이 늘기도 해요. 일본 미곡기구(米穀機構)에 따르면 2016년 1인당 월평균 쌀 소비량이 그전 해보다 6% 늘어난 4.66㎏였대요. 2012년에도 반짝 늘었고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나카쇼쿠(中食)'가 늘어서랍니다. 반찬이나 반조리 식품을 사 와서 집에서 하는 식사를 말해요. 식비를 줄이려고 싼 반찬을 사오고 집에서 밥을 지어 곁들여 먹는 1인 가구가 늘어났어요.

: 한국도 비슷한 흐름이 있긴 해요. 전체 쌀 소비는 줄었는데 최근 햇반 판매량은 늘었다는 거예요. 외식비가 비싸니 밥을 집에서 해결하는 1인 가구 때문이라네요.

: 일본 광고 회사 '하쿠호도'에서 2년 전 한 흥미로운 설문이 하나 있어요. '쌀밥을 하루에 한 끼도 안 먹으면 기운이 안 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는 대답이 49.6%로 1992년 71.4%에 비해 20%나 줄었어요. 절반 가까이는 쌀밥을 아예 안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 밥심을 불변의 가치로 여겼던 한국도 많이 바뀌었어요. 한창 다이어트하느라 샐러드만 먹는 동료가 그래요. 예전엔 비슷한 상황에서 '풀이 끼니가 되느냐' '그러다 쓰러지겠다'는 둥 주변 사람들 '방해 공작'에 말려들어 백전백패했는데 이번은 달라졌대요. 샐러드로 점심 먹는 사람이 많아져서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래요. 옆자리 ○○씨, 다이어트 성공 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