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룡 미투사건'을 총정리한 한국기원 보고서가 시중에 유출돼 무방비로 유포되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양측이 모두 재조사를 요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김성룡〈작은 사진〉 미투사건은 헝가리 출신 여성 기사 디아나 코세기 초단이 "2009년 김성룡의 집에서 성폭행당했다"는 내용을 4월 16일 밤 기사 전용 인터넷에 폭로한 사건을 말한다. 김씨는 7월 10일 한국기원 이사회 결의로 전문기사직서 제명됐다.

김씨는 지난주 "많은 선후배 기사들이 원하시니 공정하게 재조사해 달라"며 한국기원 윤리위원회 보고서에 대한 재조사 요청서를 한국기원에 제출했다. 그는 이 글에서 "보고서가 왜곡됐다. 특히 디아나 측이 주장하는 특정 장소에 내가 없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며 불복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한편 일부 프로기사들은 한국기원을 향해 윤리위 보고서 폐기와 공정한 재조사를 촉구하는 자체 서명을 펼치고 있다. 3일 현재 175명이 서명, 전체 프로기사(350명)의 절반이 동참했으며 이창호 박정환 신진서 등 핵심 프로들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립 중인 양측이 정반대 입장에서 한국기원에 이 사건의 재조사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기사 서명 운동을 주도한 김승준 9단은 "왜곡된 보고서는 2·3차 피해로 이어지거나 김성룡 측의 상황 반전 시도에 악용될 수도 있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며 재조사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서명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디아나 지지 세력은 윤리위 보고서가 "디아나의 협조가 없어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지만, 종합적으로 김성룡의 진술이 일관성과 신빙성 면에서 더 높다"고 결론지은 대목에 특히 반발하고 있다.

김성룡 미투 사건을 정리한 한국기원 윤리위원회 조사 보고서(왼쪽)와 프로기사들의 재조사 요청 서명 명부.

프로기사 사회의 분파(分派) 후유증까지 우려되면서 한국기원 집행부의 위기 관리 능력과 리더십 부재를 지적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초동 대처에 실패한 뒤 한 달 반을 질질 끌고도 개운한 종결은커녕 분란만 키웠다는 것. 최근 한국기원은 한종진 남치형 등 몇몇 프로기사들과 운영위 진행 방식을 놓고 '오해', '직무 유기', '명백한 왜곡' 등 날 선 언사로 온라인 논쟁을 펼치기도 했다.

무엇보다 윤리위 조사보고서의 외부 유출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한국기원의 실책이다. 성폭행 여부를 다룬 보고서이다 보니 낯 뜨거운 '19금(禁)'급 내용들이 여러 곳에 등장한다. 이 보고서는 파일 형태로 10여 일째 각종 SNS상에 떠다니고 있고 이미 수천 명이 읽었다. 바둑의 품격과 이미지를 크게 훼손시킨 책임을 누군가 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기원은 오는 18일 이번 사태와 관련해 운영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김성룡 측이 제출한 재조사 요청서와 프로기사 서명 리스트를 함께 놓고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당사자 쌍방과 팬들 대부분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집행부가 어떤 답안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