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논설위원

볼링과 경제정책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킹핀(king pin)'을 쓰러뜨려야 한다. 올 초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들은 얘기다. 그는 "킹핀을 찾아서 넘어뜨려야 한다"고 했다. 핀 10개 가운데 맨 앞에 있는 1번 핀을 맞혀서는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없다. 볼링을 해본 사람은 다 안다. 스트라이크를 치려면 1번 핀 뒤에 숨어있는 5번 핀을 맞혀야 한다. 볼링공이 1번 핀과 3번 핀, 왼손잡이라면 1번 핀과 2번 핀 사이로 휘어 들어가서 5번 핀을 때려야 다른 핀을 연쇄적으로 넘어뜨릴 수 있다. 그래서 '킹핀'이라고 한다. 경제 부처에서는 파급효과가 큰 '핵심 목표'를 뜻하는 말이다.

볼링을 처음 하는 사람들은 맨 앞 1번 핀을 목표로 한다. 맨 앞에 있으니 그래야 될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도대로 정확히 1번 핀을 맞힌다고 해도 결과는 좋지 않다. 양쪽 끝 핀이 남는 '스플릿(Split)'이 나기 쉽다.

소득 주도 성장의 대표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은 그야말로 1번 핀을 맞히겠다고 하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월급 올려줘서 당장 손에 돈을 쥐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소비가 늘고, 물건이 잘 팔리고, 기업이 물건을 더 만들기 위해 투자하고, 성장이 이뤄진다고 예상했다. 스트라이크는 고사하고 스플릿이 났다. 올 들어 소득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지면서 양극화만 심해졌다는 통계가 나왔다.

김 부총리는 "핀을 많이 쓰러뜨리려면 어떤 것이 킹핀인지 고민해야 한다. 저성장 고착화, 일자리 감소, 부동산 가격 상승, 저출산 등에 대한 태클(적극적 정책)이 필요하다. 구조적으로 똬리를 튼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세계 경제가 좋은 흐름을 타고 있다. 구조적, 근본적 개혁을 할 수 있는 적기다. 정부 경제팀장으로서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하겠다"고 했다. 단단한 각오가 손에 잡힐 듯했다.

그런데 자꾸 1번 핀으로 공을 굴린다.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고용이 깨지고, 저소득층 근로 소득은 기록적으로 줄어들었다. 그걸 세금 퍼부어서 막겠다고 한다. 내년 예산안은 470조원이 넘고 소득 주도 성장 뒷감당에 국민 세금 162조원을 퍼붓겠다고 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고용 늘려보겠다고 했지만, 그것도 1번 핀일 뿐이다. 성장이 없으면 고용은 늘어나지 않는다. 인건비 부담 커지고, 경기 회복은 더딘데 직원 늘릴 회사가 없다.

작년과 올해 정부가 일자리 만든다고 쓰는 돈이 50조원이 넘는다. 이 돈으로 비과세·감세·감면 등 기업 세제 혜택과 국가 전략 R&D에 투자했으면 달랐을 것이다. 기업은 비용이 낮아지고 이익이 보이면 고용과 투자를 늘리지 않을 리 없다. '킹핀'이 거기에 있다. 최저임금 인상 대신 이렇게 간접적으로 시장과 기업을 지원해야 했다.

김 부총리는 작년 5월 취임사에서 기획재정부 직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이 언제 한번 실직(失職)의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장사하는 분들의 어려움이나 직원들 월급 줄 것을 걱정하는 기업인의 애로를 경험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경제정책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힘겹게 버티는 사람이 더 늘어났다. 올해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한창 가장(家長) 노릇 해야 할 40대 취업자가 지난달 14만명이나 줄었다. 김 부총리는 요즘 들어 "책임지겠다"는 말을 한다고 들었다. 책임지는 방법은 다른 것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킹핀'이 아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 뒤에야 사표도 낼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