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갑자기 통계청장을 교체했다. 통상 재임 기간이 2년 안팎인 자리였는데 13개월 만에 바꿨다. 교체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 최근 통계청에선 재난에 가까운 고용 감소와 소득 분배 악화를 보여주는 통계를 발표한 바 있다. 갑작스러운 통계청장 교체는 이와 관련 있을 것이다.

고용·소득 통계는 올해 들어 온통 악화되는 것뿐이다. 실업률이 18년 만에 최고로 치솟고, 실업자가 7개월째 100만명을 웃돈다. 지난해 월평균 30만개 늘어났던 일자리가 월 10만개 선으로 떨어졌다가 급기야 지난달에는 5000개 증가에 그쳤다. 특히 지난 1분기 빈부 격차가 최악이었다는 통계가 청와대 심기를 건드렸다고 한다. 경제정책을 잘못해 나쁜 결과가 나왔으면 정책 입안자가 책임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 정권에선 통계청장이 책임을 진다. 세계에 이런 일이 있을까 싶다. 물러난 통계청장은 언론에 "제가 그렇게 말을 잘 들은 편은 아니었다"고 했다. 청와대에서 상당한 압력이 있었다는 말이다.

문 대통령은 경제정책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계청장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앞으로 그런 숫자를 발표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 실제 새로 임명된 통계청장은 청와대 입맛에 맞는 통계를 발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골랐을 수 있다. 지난 5월 청와대는 보건사회연구원과 노동연구원에 통계청 자료를 재분석하라고 했다. 가구별 통계인데 개인별로 뒤집어서 "하위 10% 근로자만 소득이 줄었다"고 분석한 자료가 만들어졌고,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했다. 당시 보건사회연구원에서 "통계청 표본에 문제가 있다"는 자료를 만든 장본인이 신임 통계청장이 됐다.

당시 청와대는 "통계청에서 나온 자료를 더 깊이,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것"이라고 했다. 신임 통계청장은 앞으로 청와대 요구대로 '더 깊이,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통계를 내놓게 될 것이다. 정부 편들어 주는 통계 재분석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 모든 고용·소득 통계가 가리키는 것은 정부의 정책이 먹혀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와 조선·자동차 산업 불황 등이 구조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내수 경기가 좋지 않은데 최저임금 인상을 강행한 것이 악영향을 미친 것도 분명하다. 경제부총리조차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정책을 재검토하고 수정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다. 그런데 불난 것은 놔두고 불이 났다고 알린 사람을 자른다. 통계를 입맛대로 꿰맞추면 고용이 늘고 저소득층 소득이 올라가나.

통계는 모든 정부 정책의 기초가 된다. 통계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할 수 없다. 통계에는 정파가 없다. 현실 그대로의 숫자, 객관적 사실만 있을 뿐이다. 성적이 나쁜데 공부를 더 할 생각을 않고 성적을 고치려 하나. 통계 왜곡, 변조, 조작은 중대한 범죄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