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태풍 중 가장 오래, 가장 강한 강도로 수도권 내륙을 관통할 것으로 예보됐던 19호 태풍 '솔릭'이 예상보다 적은 피해를 내고 24일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기상청은 24일 "23일 오후 11시쯤 목포에 상륙한 태풍 솔릭이 11시간가량 내륙을 이동해 24일 오전 10시쯤 강릉을 거쳐 동해안으로 진출했다"고 밝혔다.

◇변동성 커 태풍 예측 어려워

이번 태풍이 몰고 온 강풍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태풍 기준(10분간 평균 최대풍속이 초속 17m 이상)에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에 태풍급에 해당하는 강풍이 분 곳은 소수에 그친 것이다. 이에 대해 기상청 관계자는 "태풍이 상륙하면 (땅과 건물 등과의) 마찰력 때문에 관측망의 바람 세기는 약하게 나타날 수 있다"면서 "상공의 바람 세기는 태풍 강도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강원도 양양, 물에 잠긴 남대천 산책로… 전남 고흥, 아파트 담장이 와르르… 순천, 강풍에 떨어진 배 - 24일 한반도를 빠져나간 태풍‘솔릭’은 전국 곳곳에 상흔을 남겼다. 이날 많은 비가 내린 강원도 양양군 양양남대천의 물이 범람해 산책로가 물에 잠겼다(위 사진). 전남 고흥군 고흥읍의 한 아파트는 담장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가운데). 전남 순천시 낙안면 신기리의 배 과수원에서 농민이 강풍에 떨어진 배를 주워담고 있다(아래).

각각 1000㎜, 300㎜ 넘는 폭우가 내린 제주도와 전남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호우 피해도 사실상 없었다. 애초 태풍 이동 경로 중심선상에 놓일 것으로 예보됐던 수도권 지역은 서울 강수량이 6㎜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역대급 태풍'이라더니 '역대급 허풍' 아니냐"고 기상청 예보를 비판하는 말이 나왔다.

우선 태풍 경로 예보가 논란이다. 우리 기상청 예보가 일본 기상청보다 못했다는 것이다. 기상청은 23일 오전까지만 해도 "태풍이 태안반도 부근에 상륙해 경기 남부를 지날 것"으로 봤다. 그러다 태풍 상륙(23일 오후 11시) 직전 마지막 예보였던 23일 오후 10시 예보에서 "솔릭이 1시간 뒤인 11시 목포로 상륙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일본 기상청은 이보다 약 11시간 전인 23일 낮 12시 발표에서 "태풍이 목포로 상륙해 강릉 방면으로 빠져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는 실제 솔릭의 이동 경로와 흡사하다.

전문가들은 "태풍은 변동성이 커 정확한 경로 예측이 어렵다"고 말한다. 문일주 제주대 태풍연구센터 교수는 "우리나라 예보를 보면 시간대별로 상륙 지점이 차츰 남쪽으로 이동했는데 이는 일관된 예측을 했다는 증거"라며 "이달 초 발생한 제14호 태풍 '야기'의 경우 우리나라 예보가 미국, 일본보다 더 정확했다"고 했다.

◇장시간 서해 머물러 약해져

태풍 솔릭의 강도와 크기 예측도 도마에 올랐다. 기상청은 23일 오후 4시 예보까지 솔릭이 '중간 강도' '중형 태풍' 세력을 갖고 상륙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상륙 후에도 9시간가량 중간 강도 세력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중간 강도'는 풍속이 초당 25~33m 미만, '약한 강도'는 17~25m 미만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간 강도' '소형 태풍'으로 상륙해 4시간 만에 '약한 강도' '소형 태풍'으로 축소됐다. 반면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는 이미 23일 오전부터 솔릭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할 것으로 분석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기상청 예보가 실제 상황보다 세게 나온 것은 '안전상의 이유' 측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 센터장은 "국가 재난을 대비해야 하는 기상청 입장에서는 조금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더 강한 태풍이 올 것으로 예보할 수 있다"면서 "약한 태풍이라고 했다가 강한 태풍이 오면 큰 재난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기상 전문가는 "바람의 강도나 강풍 반경 등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예보를 과장하는 게 '예보관의 심리'"라며 "그래야 비난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편 솔릭이 예상보다 빠르게 힘을 잃은 것은 23일 장시간 제주도 서해상에 머문 것이 주요인으로 분석된다. 솔릭은 23일 새벽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9시간가량 제주도 서해상에서 시속 4~8㎞ 속도로 느리게 이동했다. 문일주 교수는 "수온이 10~14도인 '황해저층냉수(黃海底層冷水)' 지역에 솔릭이 오래 머물다 보니 태풍의 세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열에너지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세력이 급격히 약해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