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솔릭' 24시간 전 예측 능력
일본→미국 →한국 順
"한국 태풍 예측이 가장 어렵다"

"어떻게 우리나라 기상을 일본 기상청이 더 잘 맞추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구라청(거짓말 기상청이라는 뜻)' 예보관 교체를 바랍니다."

태풍 ‘솔릭’이 한반도에 큰 상흔을 남기지 않고 지나갔다. 한숨 돌린 이들이 24일 기상청에 대한 평가와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제19호 태풍 '솔릭'의 이동 경로 예보가 매번 틀렸다는 것. "태풍 피해가 예상보다 적어 다행이지만 짚을 건 짚자"는 분위기다.

원래 ‘태풍 예보’는 기상 예보 중 가장 고난도 과제에 속한다. 특히 한반도를 지나는 태풍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제트기류, 대륙 분포, 해수면 온도 변화, 찬 공기와 만남 등의 온갖 변수가 예측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코앞에 다가온 태풍 진로를 맞추지 못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픽=박길우

실제 기상청은 한반도 최초 상륙지를 당초 충남 보령으로 관측(23일 오전 7시 예보)했다. 그런데 3시간 뒤에 상륙 지점을 전북 군산으로 수정했다. 같은 날 오후 3시 전남 영광으로 재(再)수정했고, 오후 6시엔 전북 부안으로 다시 '재재수정'했다. 상륙 지점은 오후 10시 30분에 되돌아왔다. 결국 예보와는 달리 솔릭은 지난 23일 오후 11시쯤 전남 해남군 화원반도에 상륙했다.

하지만 네티즌의 주장과는 달리 일본 기상청 예보 역시 종잡을 수 없는 '솔릭'에 오보(誤報)를 냈다. 다만 약 하루 시차로 '한발 빠른 예보'를 내놨다. 일본 기상청은 우리보다 하루 앞선 지난 22일 오후 6시에 솔릭의 상륙지를 군산으로 예측했다. 23일 오전에는 전남 목포를 상륙 지점으로 찍었다. 소셜미디어(SNS)에는 이런 일본 기상청 예보가 공유됐다. "일본 예보가 더 정확하다"는 얘기는 그래서 나왔다.

기상예보 ‘강국’인 미국도 헛다리를 짚었다. 미국합동태풍경보센터(JTWC)는 지난 22일 솔릭이 인천 강화군 쪽으로 상륙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23일 오후 6시 발표에서는 목포 상륙, 군산 경유로 수정했다. 일본 기상청보다는 느렸지만, 우리 기상청보다는 빠르고 정확한 예측이었다. 솔릭 예보전은 일본→미국→한국으로 순위가 갈렸다.

'태풍진로 종합점수'도 있다.
지난해 발생한 27개 태풍에 대한 한·미·일 진로 예측을 분석한 '2017 기상 연감'을 보자. 24시간 예보 기준으로 일본의 예보 오차가 82km으로 가장 정확했다. 미국 85km, 한국은 93km였다. 이번에도 역시 일본→미국→한국 순.

부러진 전봇대와 강풍에 뒤집어진 우산 - 태풍 솔릭의 영향으로 제주 삼양동에서는 태양광 패널이 강풍을 못 견디고 떨어지면서 전봇대가 쓰러져 일대가 정전되는 사고가 발생했다(왼쪽 사진). 23일 전남 목포에 강풍이 불고 비가 내리자 퇴근길 시민들이 우산을 든 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한국 기상청이 강한 ‘종목’도 있다. 96시간 예보에서는 예측력이 뒤집힌다. 한국이 313㎞로 오차가 가장 작았고, 미국과 일본은 각각 322㎞·335㎞로 비슷했다.

이보다 한해 앞선 2016년 역시 ‘24시간 예보’는 일본이, 72시간 예보에서는 한국이 상대적으로 정확했다. 2011년 이후 ‘ 48시간, 72시간’예보에서는 미국→한국→일본 순으로 순위가 다시 한번 바뀐다. 한국은 태풍 예보를 할 때, 24시간, 48시간, 72시간, 96시간 이후 태풍의 예상위치 범위를 알려준다.

◇부자 나라, '비싼 기계'에 원인이 있다?
일각에서는 부국(富國)인 미국·일본의 장비가 더 뛰어나 예보가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차이는 없다. 기상위성 정보를 3국 예보관들이 공유하기 때문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한·미·일 예보관들은 위성 정보·예측 모델 등 같은 데이터를 본다. 수퍼컴퓨터 등 관측 시스템에도 별 차이가 없다"면서 "결국 똑같은 데이터를 두고 최종 판단하는 건 개별 국가의 예보관"이라고 말했다.

기상청도 할 말은 있다. 태풍 경로는 변수가 많아 자주 수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 최고의 예측력을 자랑하는 미국 JTWC, 일본 기상청도 솔릭 진로를 두고는 자주 말을 바꿨다.

오히려 이달 초 일본 오키나와 남동쪽 해상에서 발생한 제14호 태풍 ‘야기’(YAGI)의 진로는 우리나라 기상청 예측이 가장 나았다. 미국·일본 예보관들은" 야기가 북한에 상륙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우리 기상청만 "중국으로 진출한다"고 예보했다. 한국 기상청 예측대로, 야기는 중국 상하이에 상륙했다.

24일 오전 온라인 공간에는 “일본 기상청을 보고 배우라”며 한국 기상청을 비난하는 글들이 쏟아졌다.

2010년 9월 태풍 '말로' 진로의 경우 3국이 모두 엉터리 예측을 내놨다. 3국 예보기관은 "말로가 서해상을 따라 북상한 뒤 진로를 동쪽으로 꺾어 한반도 내륙을 관통할 것"이라고 예보했지만, 이를 비웃듯 태풍은 대한해협을 따라 동해로 빠져나갔다.

기상 전문가들은 수백km에 이르는 태풍 반경을 고려했을 때 상륙 지점에 대한 예보 오차를 따지는 게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정관영 기상청 정책과장의 얘기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최첨단 현대 과학기술을 동원해도 72시간 뒤 진로 오차가 200km에 달합니다. 기상예보관은 매일 정답 없는 정답지에 정답을 쓰려고 노력하는 셈입니다. 사실 태풍은 방재(防災) 차원에서 봐야 합니다. 상륙 위치보다는 강풍이 어디에 어느 강도로 부는지, 폭우 피해 우려 지역은 얼마나 있는지, 태풍 영향 반경을 알리는 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