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지금 삼나무 논쟁 중이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 중 하나로 꼽히는 구좌읍 비자림로(路) 확장 공사 때문이다. 비자림로는 도로 양쪽으로 30여 년 된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늘어선 절경 덕분에 사랑받는 관광지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2차선 도로가 좁은데 교통량은 많아 정체가 잦고 사고도 잦다며 확장해 달라는 민원을 오랫동안 제기했다.
도는 지난 2일부터 4차선 확장 공사에 들어가면서 도로 한쪽의 삼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했다. 총 27.3㎞에 이르는 비자림로에서 공사 구간은 2.9㎞인데, 이 중 삼나무를 베어내는 구간은 800m 정도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곧바로 반발 여론이 터져 나왔다. 길 양쪽에 늘어선 삼나무를 베어낸 모습이 소셜미디어와 언론을 통해 퍼지자 전국에서 비난 여론이 쏟아졌다. 도는 삼나무 916그루를 베어낸 시점에서 공사를 일시 중단했다. 계획대로면 2160그루를 베어내야 한다. 환경단체들은 공사 현장에서 점거 시위를 하는 것은 물론, 확장 공사 타당성을 놓고 공개 토론회를 제안했다.
논란의 핵심은 확장 공사를 위한 삼나무 벌목이 얼마나 환경을 훼손하느냐다. 제주도 보건환경연구원에 따르면 제주 삼나무는 자생종이 아니라 1924년 일제가 들여온 수종이다. 심어놓으면 성장 속도가 빠르고 나무줄기도 곧게 뻗어서 고급 목재용이나 방풍림으로 안성맞춤이고 보기에도 좋다. 1970년대부터 제주 일대에 본격적으로 삼나무 인공림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비자림로 양쪽의 삼나무숲도 당시 만들어진 것이다. 그때부터 제주 일대에 총 8700만 그루의 삼나무를 심었다.
2000년대부터 삼나무숲의 장점보다 단점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곧게 뻗는 삼나무 특성상 조밀하게 심을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생태계 다양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삼나무는 토양을 산성화하고,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면 햇빛을 가려서 다른 식물의 성장을 방해한다. 봄철이면 다른 수종에 비해 꽃가루도 많이 나온다. 제주대 환경보건센터는 봄철 제주도 지역 알레르기성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삼나무 꽃가루를 지목했다. 이 때문에 도에서는 몇 년 전부터 삼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편백나무, 고로쇠나무 등을 심어 생태 다양성을 확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2006년 한라산 성판악 일대에 3400여 그루의 삼나무를 베어낸 뒤 식물 종수가 2~3배가량 늘어나는 등 고유 생태계가 회복됐다는 조사 결과에 힘입기도 했다. 현재 확장 공사는 당시와 비슷하게 삼나무 간벌(일부만 벌채) 효과가 있는 데다, 비자림로 경관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식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 도의 설명이다.
공사 구간 인근에 사는 한모(44)씨는 "육지 사람들이 삼나무 베어내는 게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망치는 것이라고 반대하지만, 여기 사는 사람 입장에선 삼나무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라며 "관광자원도 좋지만 지역 생태계나 제주도민의 삶도 중요한데 외지에서 잘 알아보지도 않고 '나무를 자르니 일단 자연 훼손'이라는 식으로 반대하진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