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기자

"값나가게 살지는 못해도 후지게 살지는 말어."

이준익(59·사진) 감독이 최근 선보인 열세 번째 영화 '변산'에서 여주인공 선미(김고은)가 외치는 일침이다. 이 한마디가 '쇼미더머니'에서 6연속 탈락 후 고시원을 전전하던 남 주인공 학수(박정민)의 고달픈 청춘을 각성시킨다. 그가 설움과 울분을 실어 속마음을 털어내려 택한 방법은 가슴 찡한 가사의 '랩'이다. 왜 하필 랩이었을까. 전작(前作) '라디오 스타'(2006), '즐거운 인생'(2007)에서는 청춘의 생채기를 조명하는 방식이 '록'이었다. 이준익 감독은 "랩을 사실 정말 모른다"며 허허 웃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끼고 살았다. 가난하던 시절 유일한 놀이 거리가 낡아빠진 라디오였다. "1970년대 라디오 프로에선 팝송만 나왔어요. 간간이 남진·나훈아도 들렸지만 새침한 서울내기들은 CCR, 밥 딜런, 딥퍼플 등 내용도 모르는 팝송을 허세처럼 무작정 외워 흥얼거렸죠."

지금도 항상 듣는 곡이 60~70년대에 머물러 있단다. 요즘은 어릴 적 좋아했던 집시풍 영화 '라 스트라다'를 연상케 하는 보헤미안 곡에 빠져 있다.

♪ 페이퍼 레이스 'Billy Don't Be A Hero'

1974년 발매되자마자 큰 인기를 끈 추억의 명곡. 씩씩한 컨트리록 기타 소리와 가사가 유쾌하지만 사실 전후 상처를 실어낸 곡이다.

"학창 시절 신당동 떡볶이집에도 DJ가 있을 정도로 음악 다방이 유행했다. 내 주무대는 종로였다. 담배 연기 자욱한 홀에서 늘 이 곡을 신청했다. 당시 카펜터스 신청하면 '여성스러운 놈'이라고 핀잔 줬고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플린, 도어스 이런 게 '남자답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지만 퍽 재밌는 추억이다."

♫ 딥퍼플 'Smoke On The Water'

1968년 데뷔, 레드 제플린과 함께 1970년대 하드록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록밴드 딥퍼플의 히트곡.

"당시 여름만 되면 대천·변산 등 온갖 해수욕장에서 이 노래를 틀었다. 전주 듣자마자 다들 뛰쳐나와 다리가 떨어져 나가라 개다리춤을 췄다. 그러면 한 무리가 맞불 놓듯이 기타 들고 와서 딥퍼플의 또 다른 곡 'Highway Star'를 와장장 쳐댔다. 결국 시비 붙어 기타 통 자주 부서져 나갔다. 참 웃기지만 나름 낭만적이었던 그 시절 해수욕장 풍경이 얽힌 곡."

♪♫ 프랭크 시나트라 'My Way'

"미국 대중음악을 정의했다"고 칭송받은 시나트라가 1969년 발표한 히트곡.

"70년대 초반 청량리역엔 두 부류가 있었다. 경춘선 타고 강촌으로 MT 가는 대학생과 경부선·호남선 타고 올라와 구로공단 공장에서 일하던 젊은 청춘들. 여기서 누군가 통기타로 이 노래를 치면 깔끔한 칼라 셔츠도, 푸른색 노동복도 구분없이 '떼창'을 쏟아냈다. 나 역시 그 사이에 섞여 즐겨 부르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