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시작해 200년째 이어진 맥주 축제
무거운 맥주잔과 빠르게 사라져가는 거품…700여만 명이 모여 600만 리터 맥주 마셔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는데 후끈한 열기가 먼저 느껴졌다. 뮌헨 중앙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들은 대부분 바이에른 전통 복장을 하고 있었다. 멜빵이 달린 반바지에 스타킹의 레더호젠(Lederhosen)을 입은 남자들과 발랄하게 머리를 땋고서 앞치마를 두른 풍성한 치마차림의 드린딜(Drindil)을 입은 여자들 모두가 동화책에서나 보던 것처럼 귀여운 느낌이다.
전철이 도착할 때마다 끊임없이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한 곳으로 향한다. 어떠한 비장한 각오도 없고 결의도 없는데 모두가 한 방향이다. 모두가 축제의 장소로 흘러가는 것이다.
◇ 모두 그곳으로 간다… 세계 최대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브라질 리우의 삼바축제, 일본의 삿포로 눈 축제에 이어 뮌헨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세계 3대 축제로 꼽힌 지 오래되었다. 매년 9월 15일 이후의 토요일부터 10월 첫째 주 일요일까지 열리는 맥주 축제다. 이를 위해 독일 전역 또는 세계 각지에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언저리에 내가 있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 축제. 한국에서 출발 전 친구에게 "술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상관없겠지?"하고 물었더니 "맥주가 술이냐?"고 반문하며 이미 술 취한 사람처럼 훈계를 했다. 그렇다. 독일 어딜 가나 물처럼 흔한 것이 맥주다. 물은 안 마셔도 살 수 있지만, 맥주는 마셔야 한다던 말 또한 자주 들어왔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수많은 사람이 이렇듯 한 방향일 수가 있겠는가?
이 광경을 보는 것만으로 취기가 오른다. 중앙역에서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맥주 향이 나는 것만 같았다. 행사장으로 이어지는 15분 정도의 거리를 어떻게 걸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떠밀려서 쏟아진 맥주처럼 흘러들어 왔다. 나도 사람들처럼 마시기 전에 이미 취했을 것이다. 몇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텐트들이 새로운 도시를 만든다. 그 안에 온통 맥주가 거품을 날리며 매 순간 건배 되고 있다. 축제가 이어지는 기간 동안 천 개가 넘는 맥주 브랜드가 참여하는데 7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며 600만 리터 이상을 소비한다고 했다. 700만 명은 대충 짐작하겠으나 600만 리터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매년 갈수록 이 숫자는 커지고 있다고 한다.
◇ 루비히 1세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시작…200년째 이어져
춤을 춘다. 반짝이는 전구가 대낮에도 일찍 뜬 별처럼 반짝이고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한다. 이미 취한 사람들은 풀밭에 누워 지긋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누워서도 계속 맥주를 마신다.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잔을 받아들고 거리로 나왔다. 아니다. 골목이다. 텐트가 맥주를 즐기는 은신처라면 텐트와 텐트 사이는 골목이 된다. 그 골목에 앉아서 그들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빨리 취한다. 돌처럼 무거운 맥주잔과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는 거품과 거품 너머로 흥겹게 춤을 추는 사람들이 한 프레임 안에서 다 이루어지는데 이것이 낯설다. 마치 서커스공연장 같은 텐트 속에서 초 단위로 이루어지는 건배 소리와 파도 타듯 출렁이는 사람들의 함성. 그야말로 텐트 안은 뜨거운 용광로 같다. 그랬기 때문에 맥주로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혀야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냥 즐기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함이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다.
1810년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루비히 1세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생긴 축제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결혼식 피로연이 200년 가까이 해마다 거행되는 것이다. 축제가 열리는 이곳 테레지엔비제 역시 왕비가 된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이 광란이 사랑스럽다고 했다. 사랑의 결실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사람들을 흥분하게 한다.
◇ 1년에 한 번, 세계에서 가장 얼큰한 축제의 골목
수많은 맥주회사가 설치하는 텐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하루의 친구이며 가족이 될 것이다. 그 힘은 맥주에서 오는 게 아니라 독일인들의 기질처럼 여겨졌다. 아니다. 그 모임에 항상 맥주가 있었을 테니 역시 맥주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할만하다. 축제 기간 중 이틀을 부러움의 눈으로 그들과 건배를 했다. 맥주가 부르는 게 아니라 맥주를 마시자 청하는 사람의 건배가 불러 모으는 것이다.
1년에 한 번 세계에서 가장 얼큰하고 후끈한 골목. 거대한 천막들 너머로 울려 퍼지는 건배의 골목. 갑자기 생긴 놀이공원의 아이들과 늦은 밤까지 테이블을 지키던 현지인들과 텐트와 텐트 사이를 오가는 이방인들. 낯선 모든 풍경이 그렇게 점점 좋아지던 시간. 휘영청 달이 뜨고 하루가 깊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살아도 좋지 않을까?
사소했던 모든 날에 건배를. 사람아! 사랑아! 생활아! 삶아! 아무리 부딪히고 흔들려도 우리의 잔은 쉽게 바닥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오늘 하루만큼은 아무리 취해도 용서받을 일이다. 우리는 조금 더 자주 잔을 부딪쳐도 나쁠 것 없는 삶이다. 그러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그대는 오늘도 역시 수고했다. 우리 그곳으로 가서 잔을 들자! 잘 살아온 자신을 위해.
PS 맥주를 마시러 갑시다.
매년 9월 15일 이후에 돌아오는 토요일부터 10월 첫째 일요일까지 거의 3주간 진행되는 뮌헨의 가장 자랑거리다. 일반 맥주보다는 도수가 조금 높다. 마스라고 불리는 1L의 가격은 대략 10유로 내외였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예약을 해야 가능하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텐트 안의 뜨거운 분위기를 서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여기게 된다. 축제기간 동안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으며 개막과 폐막식 날 이루어지는 퍼레이드 또한 볼만하다.
◆ 변종모는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에도 여행자일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떠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 셈이므로. 배부르지 않아도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길 위에서 나누었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들을 생각하며, 그날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 ‘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