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장신구와 화려한 옷을 온몸에 두르는 건 기본. 비행기 좌석은 고급 와인바가 차려진 일등석을 이용한다. 저택의 크기는 가늠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집안 수족관에는 애완 상어가 헤엄친다. 친구는 여주인공에게 귀띔한다.

"그들은 그냥 부자가 아니야. ‘어마무시한’ 부자인 거지."

아시아계 배우가 주류가 되는 25년 만의 할리우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속 화려한 장면 모음. 영화는 미국에서 개봉한 첫날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어마무시하게 부유한 아시아인의 이야기,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Crazy Rich Asians, 존 추 감독)’가 미국에서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 장르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가 미국에서 개봉 첫날인 15일(현지 시각)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개봉 5일째 3400만달러(약 381억원)의 수익을 올렸고, 주말에만 2520만달러(약 283억원)를 기록했다.

유독 아시아인에게 박한 할리우드 스크린의 사정을 고려하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초반 흥행은 더욱 놀라운 성적이다. 아시아계 배우가 모두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는 1993년 개봉한 ‘조이 럭 클럽(The Joy Luck Club)’ 이후 25년 만이다.

영화는 케빈 콴이 쓴 같은 제목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경제학 교수 여주인공 레이첼 추(콘스탄스 우)가 남자친구 닉 영(헨리 골드윙)의 고향 싱가포르를 방문했다가, 닉의 가족이 엄청난 싱가포르 재벌가임을 알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코믹하게 과장된 부유한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풍자하고, 싱가포르의 엘리트 사회 계층을 묘사한다.

‘그냥’도 아닌 ‘어마무시하게’ 부유한 아시아인의 존재 자체가 미국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 걸까. 원작자 콴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의 인터뷰에서 "대중이 이 이야기를 통해 ‘부(富)’ 자체에 매료될 뿐만 아니라, 부자가 살아가는 방식에도 끌릴 것이다"라면서 "문화가 다르면 돈을 다루는 방식도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싱가포르의 패션 에디터 에스더 퀵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삶을 직접 보여주고 있다. 그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아인들은 실제로 마리나베이샌즈로 온다”고 영상 속에서 말하고 있다.

영화는 실제 싱가포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의 생활 모습을 소재로 한다. 크레디트스위스가 발표한 ‘2017 세계 부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에는 15만2000여명의 백만장자(자산규모 100만달러 이상)가 살고 있다. 약 560만명인 싱가포르 인구의 2.7%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이들처럼 정작 현시대를 사는 아시아인 이야기는 미디어에서 잘 다뤄지지 않는다. 아시아인은 정형화된 모습으로만 소비된다. 영화에 출연한 한국·중국계 미국인 배우 아콰피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른 아시아 관련 영화처럼 전쟁 혹은 역사에 관한 게 아니었다"며 "아시아계 미국인이 처음 아시아로 가서 새로운 경험을 겪는 현대적인 이야기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싱가포르의 크레이지 리치 아시아인은 실제로도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긴다. 희귀한 예술 작품이나 명품·보석·와인 등을 수집하고, 해외 부동산에도 활발히 투자한다. 일부는 전용 제트기를 소유하고 있다. 이 집단은 보통 연예계, 사교계, 경영계 세 그룹으로 나뉜다고 알려져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액자산가 개인 코치는 SCMP에 "연예계 집단은 자신이 하는 일을 소셜 미디어에 게시하고 알리는 것을 좋아한다. 사교계는 눈에 띄는 행사에 참석하는 걸 즐기며, 경영계는 사업 목적의 모임에 참석한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아시아인 갑부의 삶’이란 다소 낯선 소재를 다뤘지만 사랑·독립·가족 등 보편적 가치를 담아내 관객의 공감까지 자아내고 있다는 호평이 나온다. 추 감독은 워싱턴포스트와 인터뷰에서 "내 영화는 모두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였다"면서도 "그렇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문화적 공감대도 존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