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퇴직자 17명의 취업 조건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다. 이들 대부분이 취업한 대기업들로부터 억대 연봉에 차량 제공이나 법인카드는 기본이고, 연봉과 별도의 성과급을 받았다. 심지어 어떤 퇴직자는 1억9000만원 연봉을 받으면서 '출근할 필요 없다'는 계약 조건을 단 경우도 있었다. 출근하지 않고 억대 연봉을 챙길 수 있는 직장은 세계에서 한국 공정위가 유일할 것이다.

불공정거래 행위를 단속하는 공정위는 기업들엔 저승사자 같은 존재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은 공정위가 고발해야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전속고발권'이 있는 데다 수백억,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정위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이 1조3300억원이다. 그러니 공정위 출신 전관(前官)들은 대기업 소송을 담당하는 로펌의 영입 1순위이기도 하다. 2015년 국감자료를 보면 공정위 퇴직자나 자문위원을 지낸 63명이 10대 로펌에서 고문 등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이들이 하는 일은 공정위에 로비하는 것이다. 현직 때는 기업을 상대로 무소불위 권한을 휘둘러 갑질을 하고 퇴직 후에는 그 연줄을 활용해 전관예우를 받는다. 이들은 이것을 '공정'하다고 보는 모양이다.

검찰에 따르면 공정위 고위 간부들은 실무자들을 시켜 퇴직자 재취업 조건을 담은 계획안을 만든 뒤 조직적으로 기업을 압박했다고 한다. 이게 '공정'을 지키고 감시한다는 기관의 행태다. 공정위는 퇴직자의 재취업 이력을 10년간 공시하고, 퇴직자와 현직 직원들 접촉을 제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또 어떤 구멍을 찾아낼 것이다.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조치에 앞서 제발 간판에서 '공정'이라는 말이라도 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