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ppppp ♬ ♬ pp ♬ ♬ ♬ ♬ ♬ ♬ ♬ ♬ pppppppppppp'.

'아기의 주의를 끌기 위해 목소리 대신 손뼉을 치거나 바닥을 발로 구를 때 필요한 소리의 양'의 일부. 음표와 악상으로 가득하지만, 음악이 아니라 미술 작품이다. 사운드 아티스트 크리스틴 선 김(38)이 최근 스위스 아트바젤에서 선보인 '사운드 다이어트' 시리즈 중 하나다. "작품을 들어보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발을 구르고 손뼉을 쳤다. 다시 잠잠해졌다. 소리가 없을 때를 p(피아노·약하게)로, 소리를 내야 할 때를 음표로 표현한 것이다.

"의사들이 당과 염분을 얼마나 줄이고 운동은 얼마나 해야 하는지 다이어트 처방을 하듯이, 저도 사람들에게 얼마만큼의 소리가 필요한지 처방하는 거죠. 사운드 다이어트를 도와주는 '사운드 닥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최근 열린 스위스 아트바젤에서 사운드 아티스트 크리스틴 선 김이 자신의 작품 ‘사운드 다이어트’ 앞에 서 있다. 악상 ‘p’(피아노·약하게)와 음표로 필요한 양의 소리를 표현했다.

'사운드 다이어트'를 제시한 선 김은 청각 장애를 갖고 있다. 선천적으로 소리를 전혀 들을 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국계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대학원에 가서 미술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처음에 회화(繪畵)를 했지만 생각이나 아이디어를 평면에 고정시키는 작업이 갑갑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림을 못 그렸다.

선과 색 대신 찾은 것이 소리다. 그는 "소리는 자유로웠다. 나만의 방식으로 소리를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사운드 아티스트를 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소리는 청각으로만 표현하거나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만질 수도 있고, 볼 수도 있고, 상상할 수도 있죠. 컵이 깨졌을 때 사람들이 소리 난 곳을 쳐다보면 저도 따라 봐요. 제 나름대로 컵이 깨진 소리를 인지하는 방식이 있는 것이죠."

선 김은 거리에서 채집한 소음을 증폭장치에 연결해 진동을 느끼게 했다. 드럼 위에 물감 묻은 붓을 올려두고 진동에 따라 물감이 번지게 했다. 뉴욕 휘트니미술관·MoMA(뉴욕 현대미술관) PS1 등에서 전시했고 2016년 '미디어시티서울'에 참여해 'SeMA―하나 미디어아트 어워드'를 받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선 김을 가리켜 "이 시대에 소리를 가장 잘 다루는 사운드 아티스트"라고 했다.

사운드 다이어트 시리즈는 선 김이 지난해 딸을 낳으면서 시작한 작업이다. 독일인 남편과 딸은 청각 장애인이 아니다. 딸이 집에서 접하는 언어는 영어 수화(ASL), 독일어, 영어, 외조부모가 쓰는 한국어다. 선 김은 "언어에도 위계가 있다. 여러 언어가 섞인 가정에서 수화의 순위가 밀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래서 언어 간에 균형을 맞추자는 의미에서 사운드 다이어트란 작품을 선보였다"고 했다.

"사운드 다이어트는 단지 제 아이만을 위한 게 아니에요. TV와 게임, 그리고 말, 말, 말…. 당신을 둘러싼 소리가 너무 많지 않나요? 소리에 중독된 어른에게도 사운드 다이어트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