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태 산업2부 기자

"예상했던 일입니다. 이대로 가면 헬멧에 거부감을 느껴 아예 공유자전거를 외면하는 분위기가 번질까 두렵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국내 공유자전거 업체 임원 목소리에는 근심이 묻어났다. 최근 공공 자전거 따릉이용으로 서울시에서 비치한 헬멧 858개 중 404개가 나흘 만에 사라졌다는 뉴스가 나온 뒤였다. 그는 "보름 전 홍콩에서 열리는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박람회에서 한국 스타트업 대표로 공유자전거 투자 유치를 위한 사업발표를 하며 가슴 벅찼는데 지금은 찬물을 뒤집어쓴 느낌"이라고 말했다.

국회는 지난 3월 자전거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 법안 시행을 두 달 앞두고 서울시는 시범적으로 안전모를 대여했다가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따릉이용 헬멧 한 개 가격은 1만5000원 정도. 서울시는 올해 헬멧 3만개가량을 비치할 계획이었지만 금세 사라지고 말 헬멧을 국민 세금 들여서 계속 비치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턱없이 낮은 헬멧 회수율은 이제 갓 태동하는 국내 공유자전거 업계에도 커다란 시름을 안겼다. 헬멧 사용화 법안이 처음 통과됐을 때에도 공유자전거 업계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헬멧 의무화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공유자전거가 기본적으로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1~2㎞ 이내의 짧은 거리를 가기 위해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이 흘린 땀이 묻어 있는 헬멧까지 굳이 돌려 쓰겠느냐는 주장을 폈다. 한 공유자전거 업계 관계자는 "자전거 분실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힘든 데 헬멧을 무료로 나눠주라는 것은 사업하지 말라는 얘기"라고까지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공유자전거 업계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걸고 서울시 따릉이용 안전모 대여 시범 사업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해외에서도 헬멧 의무화는 논란거리다. 호주에서는 헬멧 의무화 이후 자전거 이용자 수가 37%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자전거 활성화 강국인 네덜란드·덴마크를 비롯해 대다수 국가는 여전히 헬멧 착용을 자율에 맡기고 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헬멧을 의무화할 필요성이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자전거 인구를 확산하는 게 먼저라는 판단에서다.

우리나라 공유자전거 시장은 막 태동하는 참이다. 특히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 인프라를 갖춘 한국은 자전거에 추적 장치를 부착해 굳이 자전거 대여소를 찾아가지 않고도 아무 데서나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돌려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시험해볼 수 있는 최적의 테스트베드(시험무대)다. 공유 자전거 업계의 말대로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신(新)사업이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 때문에 싹도 틔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