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나온 유시민·정재승·이경미 인쇄본 사인책.

회사원 유은서(40)씨는 최근 선물 받은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의 신간 '열두 발자국' 표지를 넘기다 깜짝 놀랐다. "인간이라는 '미지의 숲'으로 탐험을 떠나요!"라는 글귀와 함께 저자 사인이 있었다. '직접 사인받은 책인가?' 놀란 유씨는 사인이 물에 번지지 않아 한 번 더 놀랐다. 친필이 아니라 사인을 인쇄한 것이었다.

'사인 인쇄본' 열기가 뜨겁다. 정 교수의 '열두 발자국'은 초판 1만8000부에 사인을 인쇄했다. 시사평론가 유시민씨의 '역사의 역사'는 초판 5만부에 '당신의 삶이 역사입니다. 2018년 여름 유시민'이란 저자 사인을 인쇄했다. 영화감독 이경미 에세이 '잘돼가? 무엇이든'도 초판 3000부를 사인 인쇄본으로 만들었다.

초판 혹은 초판 일부에 저자 친필 사인을 넣는 경우는 있었다. 책의 희귀성을 높여 초기 판매를 촉진시키려는 마케팅 방식. 이승우 소설집 '만든 눈물 참은 눈물'은 초판 중 500부 한정 수량을 친필 사인본으로 배부했다. 최해경 마음산책 차장은 "독자들의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판매 촉진에 도움된다"고 말했다.

친필 아닌 사인 인쇄본도 마케팅 효과가 있을까? '열두 발자국'을 낸 어크로스 김형보 대표는 "많은 팬을 거느린 저자의 경우 '기왕이면 다홍치마' 효과가 있다. 사인회에 참석할 수 있는 수가 한정돼 있어 인쇄본만으로도 독자가 '특별한 책'을 얻은 느낌이 들 수 있다"고 했다.

초판 부수가 많아 일일이 사인하기 힘든 이유도 있다. 한 출판인은 "온라인 서점 예약 판매가 활성화되면서 사인 인쇄본 제작도 덩달아 활발하다"고 했다. 책이 나오기 전 구매하는 충성심 강한 독자들에게 팬 서비스를 해야 하는데 비용 대비 효과가 큰 것이 사인 인쇄본이어서다.

초판 3000부를 찍는 경우 사인 인쇄본을 만드는 데 드는 추가 제작비는 10만~20만원 가량. 단 인쇄본이라는 걸 고지해야 한다. 김효선 알라딘 MD는 "독자가 친필로 오인할 경우 항의 등 역효과가 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