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당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19대 대선,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중도보수 정당은 모두 패배했고, 지지율은 바닥 수준이다. 보수세력을 대변할 정당이 아예 없다는 소리도 나온다. 실제 보수정당에 실망한 많은 유권자들은 정치를 외면하고 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보수정당이 살 길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정치권 안팎의 전문가들과 보수정당 지지자들의 고견을 청취했다. 그 결과 ①인적청산을 통한 과거와의 단절 ②중도·보수 정당끼리의 연대(합당)를 통한 보수 대통합 ③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원칙을 앞세운 대여 투쟁 강화 ④‘따뜻한 보수’·‘동반성장’ 등 탈이념적 중도화를 통한 외연 확장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인적청산을 통한 과거와의 단절이 필요하다
한국당 안팎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의견은 ‘인적쇄신’이다. 많은 원로들은 “한국당이 완전히 죽어야 살 수 있다”는 제언을 하고 있다. 한국당이 몰락한 제1원인을 고질적인 계파갈등으로 보는 것이다. 한국당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집권했던 기간 무엇을 했는지, 왜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았는지 성찰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 한국당에서는 일부 의원들이 2020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러나 국민들은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한국당 의원총회와 일부 의원 모임 등에서는 “현역 의원들이 전부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해야 한다”, “비대위원장에게 불출마 서약서를 써서 제출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한 한국당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이전 정부 시절 얘기를 끄집어내 공세의 도구로 쓸 것”이라며 “(당의)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국민들이 박근혜 정부 시절 새누리당과 지금의 한국당을 똑같이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의 인적청산은 필수적”이라고 했다. 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당분간은 인적청산 없이 당을 운영해나갈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적청산 필요성에 대해서는 당내 공감대가 크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보수정당의 통합이 필요하다
19대 대선때부터 ‘보수 빅텐트’, ‘중도·보수 후보 단일화’ 등은 계속 정치권의 화두였지만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현 여권의 지지율이 워낙 두터운 상황에서 보수정당이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를 뚫지 않고 경쟁하는 것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실제 지난 선거들의 결과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실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물밑에서는 야권 통합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다. 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취임 전후로 바른미래당 인사들을 접촉하고 있다. 옛 바른정당 출신 바른미래당 관계자는 “가치라는 면에서 봤을 때 김병준 체제가 제대로 자리잡으면 (정당을) 같이 못할 것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옛 국민의당 호남계 출신 바른미래당 의원들은 대체적으로 통합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독주 속에서 이들을 견제할 새로운 정당이 탄생해야 한다”며 “새 정당은 중도·보수 세력의 통합 정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 관계자는 “현재는 ‘세력’이라고 할 게 전혀 없다시피한 남경필, 안철수, 원희룡, 유승민 등 중도·보수세력의 잠룡들이 통합을 통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원칙을 앞세워 대여 투쟁 강화해야
한국당이 본연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주의를 핵심 가치로 여기는, 경제와 안보 중심의 유능한 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분열된 보수우파 세력을 통합하고, 자유민주 진영의 지지를 결집하자는 것이다. 한국당에서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과 확실한 차별화 지점을 경제와 안보로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과 실정을 지적하면서 국민에게 대안 야당의 면모를 보이자는 전략이다. 실제 한국당에서는 연일 최저임금 인상, 일자리 정책, 탈원전 정책 등과 관련해 현 정부에 각을 세우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은 앞서 문재인 정부를 ‘국가주의’로 규정하면 ‘자율’이란 가치를 강조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를 ‘국가주의’로, 한국당을 ‘시장주의’로 프레이밍해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당 관계자는 “결국 보수정당이 국민들로부터 다시 사랑을 받으려면 초심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며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중시한다는 점과 국가 안보관을 명확하게 보여드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따뜻한 보수’·‘동반성장’ 내세우고 탈이념 중도화로 외연 확장하라
최근의 선거들에서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흐름이 뚜렷했다.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는 ‘좌클릭’을 통해 민심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앞서 지난 2012년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 등 야권의제를 선점해 ‘보수정당의 중도화’ 전략을 취해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한국당 비대위원장으로 노무현 정부 출신 김병준 위원장이 임명된 점이나, 당내 권력의 추가 바른정당 출신 복당파(비박계) 쪽으로 다소 기울었다는 점에서 이같은 중도화 경향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당에서는 “당을 극단화하기보다는 중도화하는 노력을 통해 개혁적 보수를 만들어야 한다”며 “지금 시점에서 우경화하자는 것은 민심을 등지자는 얘기”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국당이 민생을 중시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정치세력으로 환골탈태해야 다수 국민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