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당선자가 지난해 1월 의회 의사당 발코니에서 취임 선서를 마쳤을 때의 일이다. 전 세계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막말쟁이’를 수장(首長)으로 맞이한 미국의 앞날에 대한 우려와 함께 그의 전임자 버락 오바마의 ‘포스트 백악관’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쏠렸다.

특히 그가 부인 미셸과 시카고로 돌아가는 대신 워싱턴에 남겠다고 밝히면서, 일각에서는 이들 부부가 미 정계의 구원투수로 활약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커졌다. 그도 그럴 것이, 퇴임 당시 오바마의 지지율은 60%에 육박했으며 미셸 또한 ‘2020년엔 (대선 후보로) 미셸(#Michelle2020)’이라는 구호가 나올 정도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염원과 달리 오바마 부부는 미련없이 정치무대를 떠났다. 이후 이들은 각자의 자서전을 집필하는 것 외에는 좀처럼 근황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8개월 간 부부가 공개 석상에 나타나 화제가 된 건 올해 2월 스미스소니언 국립초상화미술관이 공식 초상화를 공개했을 때가 유일하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그의 부인 미셸.

흥미로운 건 최초의 흑인 대통령 부부로서, 그리고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에 든 2명으로서 어딜 가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이들이 어떻게 그렇게 조용한 삶을 사느냐다. 그것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말이다.

◇ 행사 나가랴, 강연하랴…여전히 바쁜 오바마 부부

통상 퇴임한 대통령은 활발한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다. 일선에서 물러난 뒤 후임자를 능가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아름다운 퇴장’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임기가 끝난 뒤 각종 정치적 논란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켜온 이유다.

그렇다고 오바마 부부가 워싱턴 자택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청소년 지도자 양성과 복지, 여성인권 등 평소 관심을 쏟았던 분야의 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시카고 남부에 ‘오바마 기념관’ 건립을 추진 중인 오바마 재단도 운영 중이다.

부부는 강연을 위해 각국을 순회하기도 한다. 오바마와 미셸은 각각 회당 40만달러, 20만달러가량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강연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사회 복지 프로그램 등에 기부한다. 오바마는 2012년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찾아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라는 말을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이 2017년 7월 28일 워싱턴 DC에 있는 던바 고등학교를 찾아 강연하고 있다.

백악관 시절 ‘휴가를 맘껏 즐기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부부는 종종 카리브해 등에서 카이트 서핑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남태평양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서 톰 행크스,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인사와 함께 초호화 요트 여행을 즐겼다.

대통령 재임 시절 때보다 눈에 띄지만 않을 뿐, 부부는 여전히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 한복판에서 이들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 자택 주변 ‘철통 보안’…“무엇보다 이웃들이 사생활 지켜줘”

‘SNS의 대가’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적극 활용했던 오바마 부부는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면서 사생활 공개를 피하고 있기도 하다. 워싱턴과 관련된 게시물은 지난해 3월 미셸이 올린 개와 산책하는 사진, 지난달 오바마가 쓴 워싱턴 하키팀의 우승을 축하하는 글이 전부다.

부부를 둘러싼 보안도 철저하다. 이들이 살고 있는 칼로라마 저택 앞에는 경찰차가 항시 대기하고 있으며, 방문자는 24시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찰과 신분 확인을 마친 후에야 저택에 들어갈 수 있다. 오바마 부부는 외출할 때 정문이 아닌 한쪽에 따로 마련된 통로를 이용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부부가 가까운 레스토랑에 갈 때도 경호팀이 따라붙는다. 경호팀은 부부가 예약한 레스토랑을 미리 찾아가 주변 안전을 살피며, 당일에는 부부가 앉는 테이블과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확인한다. 부부가 앉은 테이블 옆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하고 있는 주택. 워싱턴DC 칼로라마 지역에 있는 이 저택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언론 담당 비서를 맡았던 조 록허트로부터 임차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오바마 부부가 바라는 호젓한 삶을 유지시켜주는 이들은 따로 있다. 바로 이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인근 주민들은 그들의 유명한 이웃에 대해 좀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주민들은 이들 부부가 조용하고 겸손하며 사생활을 보호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고 했다.

오바마 부부가 거주하는 지역이 대부분 소셜미디어에 익숙치 않은 50~60대라는 점도 여기에 한몫 한다. 한 주민은 WP에 “부부는 워싱턴에서도 그들의 나이와 어울리는 지역에 살고 있다”며 “50~60대들은 이 둘을 봐도 휴대폰을 꺼내 트윗을 날리지 않는다”고 했다.

이와 관련, 스테파니 커터 전 오바마 행정부 선임보좌관은 “오바마 부부는 아마 워싱턴 DC 주민들이 그들 사회의 일원으로 부부를 받아들이고 부부가 민간인으로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걸 감사히 여기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