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평양에서 열린 남북통일농구 경기에는 특별한 선수가 등장했다. 지난 1월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국가대표 농구선수가 된 리카르도 라틀리프(29·한국이름 라건아)가 그 주인공이다. 지금까지 혼혈 선수가 귀화한 사례는 있었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인과 아무런 혈연관계 없이 한국 국적을 받은 농구선수는 라틀리프가 처음이다.
외교 전문 매체 포린폴리시(FP)는 17일(현지 시각) “남북 평화를 기념하는 농구 경기에 키 199cm의 흑인계 선수가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하는 이색 광경이 펼쳐졌다”며 “북한과 다르게 한국은 지난 10년 동아 다인종을 포용하는 너그러운 국가로 변화했다”고 전했다. 남북 분단 이후로 양측의 경제, 사회, 문화가 달라진 것뿐 아니라, 이민자를 대하는 정책에도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국은 과거 인종을 기준으로 한국 국적을 규정하는 ‘종족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에서 벗어나 1990년부터 결혼, 직장 등의 이유로 이민을 법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했다. FP는 “법 개정 이후 이민자 혹은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도 점진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며 “이제 ‘한국 국적’에 대한 남북한의 정의가 아예 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혼혈인이 방송 매체에서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점도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FP는 지적했다. 아버지가 나이지리아 출신인 모델 한현민(17)은 지난해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에 들기도 했다. 캐나다 혼혈인 가수 전소미(17)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어 아이돌그룹 ‘아이오아이’로 데뷔했다.
FP는 한국 이민자 문화의 변화는 2005년 정부가 시행한 다문화 캠페인이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당면한 고령화와 반(反) 이민 정서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했다는 평가다. FP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교과서와 정부정책, 국가 이미지는 한국인 혈통의 순수성을 내세웠다”며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많은 한국인이 다문화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인식이 바뀌는 등 변화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고 했다.
한국이 다문화 국가로 전환하게 된 계기는 10여년 전 농촌 총각들이 중국, 베트남 등 외국인 여성을 배우자로 맞아하면서부터다. 그러나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혼혈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이 발생하면서 부작용이 속속 드러났다. 이를 방치하면 한국에서 언젠가 증오범죄 혹은 인종폭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한국 정부는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하고 관련 기구를 대통령직속위원회로 격상했다. 다문화 정책 정부 예산은 2009년 9690만달러(1090억원)에서 2012년 1억9750만달러(2222억원)로 3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는 2006년 53만6627명에서 2016년 200만 명 이상으로 10년 사이 4배 이상 급증했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2020년 신생아 3명 중 한 명은 한국인과 다른 아시아인 사이에서 태어나는 다문화 아이가 될 것이라고 FP는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