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종기 모여 앉아 공부하고 있는 녀석들을 한 명씩 찬찬히 바라본다. 정이 든 덕인지 귀엽지 않은 녀석이 없다.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한 모습도 상상해본다. 오늘 아이들이 공부방에서 심는 작은 씨앗은 나중에 풍성한 열매로 돌아오리라.
1997년 약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뒤로하고 마흔 넘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나는 새로운 삶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영어 어휘도 많이 익혔고 문장도 읽을 수 있으니 자신만만했다. 그런데 현지인이 하는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듣고 말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않았다. 영어라는 밧줄 하나가 더 큰 꿈을 향해 나아가려는 내 발목을 잡는 것 같았다.
10년 만에 귀국해 경남 의령에 작은 약국을 낸 내가 동네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오뚝이 공부방'을 연 이유는, 지난날의 내 모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골에 살아도 좌절하지 않고 오뚝이처럼 일어서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 삶 곳곳에 숨겨진 꿈과 희망, 도전과 열정의 알파벳을 아이들 스스로 찾아 행복해지길 바랐다. 이 책 '나는 영어를 가르치는 시골 약사입니다'(토네이도)를 쓴 이유이기도 하다. 영어로 인해 좌절하는 수많은 예비 오뚝이를 위한 해결의 문이자 예순이 넘은 내가 해야 할 마지막 소명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오뚝이 공부방'에서는 아이들이 목소리 높여 영어를 공부한다. 열악한 환경을 뛰어넘는 실력과 자신감을 갖춘 이 녀석들은 더 이상 영어를 겁내지 않는다. 아니 세상이라는 무대를 겁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약사 가운을 벗고 분필을 든다. 꿈을 향해 더 힘차게 걸어갈 이 땅의 오뚝이들을 위해!
입력 2018.07.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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