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외국산 철강·알루미늄에 각각 25%·10%의 관세 부과 법안에 서명하는 등 보호무역 조치를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미국 국내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목소리가 미국 내에서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특히 자동차, 철강, 에너지 등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 산업들조차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조치의 부메랑을 맞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들 전통제조업이 밀집돼 있는 러스트 벨트(Rust Belt)에서도 실망감이 번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4일(현지 시각) 주요 산업별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두고 현장에서 어떤 반응을 내놓고 있는지 정리했다. NYT는 이번 기사에서 “미국 산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이 친(親)기업 정책을 펼치는 것을 반겼으나, 정작 현실에선 이러한 정책이 피해를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부품 기업 울상

공장에 쌓여있는 철강 제품들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를 천명한 철강·알루미늄 업계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철강업계는 대체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조치를 반기는 분위기다. 대다수 주요 철강 기업들은 기존 공장에 생산 설비를 확장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힘입어 줄어드는 수입 철강 수요에 대응하려고 분주한 편이다.

반면, 알루미늄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미국 내 알루미늄 관련 기업 중 97%가 해외에서 알루미늄을 수입해 자동차 부품 등으로 재가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알루미늄에 고율의 관세를 매김에 따라 원자재 비용이 늘어나 오히려 소비자가 줄어들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러한 역효과는 자동차, 비행기 등 부품을 공급받는 원청 기업에도 번지고 있다. 궁극적으로 공산품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구조조정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미국 최대 철못 생산업체 ‘미드콘티넌트 스틸 앤 와이어’는 최근 시급 10달러를 받는 직원 60명을 해고하기도 했다.

◇ 에너지 업계도 복합 변수 작용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도입된 각종 환경 규제를 폐기해 석탄업계를 되살리겠다는 뜻도 여러 차례 밝혔다. 에너지업계의 로비스트를 환경보호청(EPA) 2인자인 부청장에 지명하는 한편, 릭 페리 에너지 장관에 석탄 발전소 지원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명령한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행보는 천연가스와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늘리려던 주요 에너지 기업에 적지 않은 혼란을 주고 있다. 에너지 기업 역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를 약속한 산업군 중 하나였는데, 석탄에만 힘을 실어주는 정책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 기업들은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로 인해 장비 가격이 상승해 해외 주요 기업들과의 자원 개발 경쟁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 환경 규제 완화에 촉각 곤두세운 자동차 업계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차례 보호를 약속한 자동차 업계 역시 여러 변수가 뒤엉키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 중인 배기가스 규제 완화 방침은 산업계에서도 논쟁거리다. 트럼프 대통령이 배기가스 규제 완화를 강행하려다 보면 캘리포니아 등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는 주정부가 더 강한 규제를 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뉴욕, 매사추세츠, 펜실베이니아 등 13개 주와 환경 단체들은 이러한 계획에 반대하며 법적·정치적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는 1970년 ‘청정 대기 법안(Clean Air Act)’에 따라 주 정부가 연방 정부의 규정보다 더 강력한 대기 오염 규제를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미국 미시간주 오리온타운십에 위치한 GM 공장에서 생산직 근로자들이 볼트EV를 조립하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 정부가 자동차 환경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더 엄격한 규제를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자동차 업체 대표들 사이에서는 주정부와 갈등을 빚지 않고 규제 완화를 원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제시한 자동차 관세 조치도 수입차 가격 상승으로 인해 소비 등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주장이 거세다.

◇ 보복 관세 여파로 할리 데이비슨은 공장 이전

관세 폭탄의 불똥을 맞아 해외 기업으로 이전을 검토하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토령이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상징으로 치켜세웠던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 데이비슨이 대표적이다.

할리 데이비슨은 최근 유럽연합의 보복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유럽시장용 생산시설을 외국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생산시설 해외 이전은 앞으로 18개월에 걸쳐 진행된다.

2017년 2월 매슈 레바티치(오른쪽) 할리데이비슨 대표가 자사 오토바이를 타고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 도착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이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무역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나온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달부터 유럽연합산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와 10%의 관세 부과를 시작했다. 그러자 유럽연합은 22일부터 오토바이, 버번위스키, 청바지 등 28억유로(약 3조6000억원) 규모의 미국 제품에 보복관세를 매기며 대항했다.

위스콘신주 밀워키에 본사가 있는 할리 데이비슨에게 유럽은 미국 다음으로 큰 시장이다. 지난해 미국에서 14만8000대, 유럽에 3만9800대를 판매했다. 유럽연합의 보복으로 할리 데이비슨 제품에 대한 관세는 6%에서 31%로 껑충 뛰었다. 오토바이 한 대당 2200달러의 추가 비용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연간으로 치면 올해 남은 기간에 3000만~4500만달러, 2019년에는 9000만~1억달러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할리 데이비슨은 전망했다. 이 업체 대변인은 “생산시설 해외 이전만이 유럽 고객들이 오토바이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하게 지속 가능한 선택”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