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환 검사장 사의표명 "검사이고 싶었다"
2003년 盧 전 대통령과의 악연 때문일까?
文 정부 출범 이후 4명째… 마지막 김병현도 승진 못해
문재인 정부의 두 번째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거치며 15년 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던 검사는 10명중 1명만 검찰에 남게 됐다. 민정수석으로 검사와의 대화를 지켜본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저서 ‘운명’에서 “목불인견이었다. 오죽했으면 ‘검사스럽다’는 말까지 나왔을까”라고 적었던 그 자리다.
19일 단행된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박균택(52·사법연수원21기) 법무부 검찰국장이 광주고검장으로 승진했고, 여환섭(50·24기) 성남지청장과 윤대진(54·25기)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 등 24~25기 검사 9명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이에 따라 또 한번 검찰에서는 선배 검사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문무일 검찰총장 등으로부터 사퇴권유를 받거나 알아서 미리 사표를 낸 검사들도 있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19기에서 22기까지 검사장·고검장급 8명이 차례로 검찰을 떠났다. 이석환(54·21기) 광주고검 차장검사도 인사 하루 전인 18일 사의를 표명했다.
이 검사장은 노무현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03년 3월 9일 정부 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검사와의 대화’ 간담회에 참석한 평검사 10명 중 한 사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함께 간담회 자리에 참석했다.
당시 인천지검 검사로 SK그룹 수사팀에 있던 이 검사장은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지만 여러 난항이 있다"며 "실제로 변호인이 아닌 외부인으로부터 외압이 있다. 여당 중진인사도 있고, 정부의 고위인사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혹자는 다칠 수 있다고 한다. 인사로 날려버리겠다는 속된 표현"이라며 "(이것이) 검찰의 현주소이고,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 달라고 간청을 드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 전 대통령은 "다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을 제게 고발해 주실 수 없느냐"며 "이런 사람을 검찰 떠나게 해달라. 원칙대로 하면 된다"고 맞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다른 대통령들이 해오던 인사 방식을 나보고는 하지 말라고 하느냐"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간곡히 부탁을 해야지 신문에 대놓고 비난성명을 내놓느냐"고 불쾌함을 표시했다. 당시 강금실 법무장관이 추진한 검찰 인사에 반발해 검사들이 연이어 언론에 성명을 내며 '인사 파동'이 일어난 일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이 검사장은 대표적인 금융수사통으로 대검 중수부 2과장 시절이던 2009년 중수 1과장이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수사를 담당하기도 했다. 앞서 SK 분식회계 수사팀에 있을 때 최태원 회장을 구속하면서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도 얻었다. 2011년에는 삼화저축은행 비리 사건을 수사했다.
그는 18일 오후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검사가 되고 싶었고, 그렇기에 열심히 했고 바르게 하려 노력했다”면서 “검사로서 형사사건, 금융사건, 특수사건 수사 그리고 외부기관 파견업무, 연구위원, 과학수사기획, 감찰 업무를 두루 맡았지만,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일이 없었다"고 적었다.
이 검사장이 사직하면서 ‘검사와의 대화’에 참석했던 검사 중에는 김병현(53·25기) 부산지검 동부지청장만 검찰에 남았다. 김 지청장은 이번 인사에서 승진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사법연수원 25기 동기 3명은 이날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이중 윤대진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검찰의 인사와 예산 등을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울산지검 검사였던 김 지청장은 강금실 장관을 향해 “검찰이 바라는 것은 검찰을 통제하는 장관이 아니고 검찰을 위해서 외풍을 막아주고 정치인들로부터 보호해주는 장관”이라고 했었다. 김 지청장은 노조와 회사 사이에서 중재를 돕는 공안검사로 소문나 있다. 노사분규가 많은 울산지검에 근무할 때는 노조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2015년 서울지검 공안2부장일 때는 ‘종북콘서트’ 논란을 일으킨 재미동포 신은미씨를 조사해 강제출국하도록 조치했다.
‘검사와의 대화’에서 노 전 대통령에게 공격적인 발언을 했던 박경춘(52)·이옥(54)·이정만(56·이상 21기) 변호사, 김윤상(49·24기) 변호사 등은 일찌감치 검찰을 떠났고,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한 윤장석(48·25기) 전 민정비서관은 2016년 2월 청와대에 가면서 “검찰로 복귀하지 않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최근까지 검찰에 남아있던 김영종(52)·이완규(57·이상23기) 검사는 작년 7월 문재인 정부의 첫 검찰 고위 간부 인사 때 승진명단에서 빠졌고, 곧이어 옷을 벗었다. 지방자치단체에 파견 나가 있던 허상구(58·21기) 변호사도 지난해 검찰을 떠나 이완규 변호사와 같은 로펌에 합류했다. 허 변호사는 검사와의 대화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이 토론을 통해서 (검사들을) 제압하겠다면 이 토론은 무의미하다. 검사들을 제압하려고 하지 마시고 어렵게 마련한 자리인만큼 검사들의 말을 들어달라”고 했던 인물이다.
한편 이석환 검사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있던 지난해 이른바 ‘영장 회수’ 사건으로 경고를 받고, 올해 초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발령났다. 제주지검장, 청주지검장을 역임한 고참 검사장을 초임 자리에 발령낸 것을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좌천성 인사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해 제주지검에서는 수뇌부가 법원에 접수된 압수수색 영장 청구서를 담당 검사에게 알리지 않고 회수해 온 일이 벌어졌고, 담당 검사가 문제를 제기했다. 대검은 감찰 결과 이 검사장의 불명확한 지시와 지휘·감독 소홀이 있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