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야든 한 우물을 30년 판 사람에겐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글러브를 낀 남자는 17년 프로 생활을 거치며 어느덧 국내 프로야구 현역 최고령 타자가 됐다. 1979년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 마흔. 지난 23일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박용택(LG)의 첫마디는 의외였다.

"음… 야구 정말 어렵습니다.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요."

눈을 동그랗게 뜬 그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2002년 LG에서 데뷔해 같은 팀에만 몸담은 박용택은 KBO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다. 기록이 말해준다. 이미 '6년 연속 150안타' '9년 연속 타율 3할' 같은 기록을 썼다. 가장 관심을 받는 건 양준혁(은퇴)의 통산 최다 안타(2318개) 기록. 박용택은 24일 현재 2280안타로 대기록에 거의 근접했다. 이르면 다음 달 기록 경신이 가능하다. "2001시즌 마치고 마무리 캠프에서 양준혁 선배랑 열흘 정도 같은 방을 썼어요. 그때 전 풋내기 신인이었는데, 어느새 대선배의 기록을 앞두고 있으니…. 다시 태어나 야구를 해도 이만큼 못 해낼 것 같아요(웃음)."

23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박용택은 한창 스윙 훈련을 하고 있었다. 박용택은 홈경기가 있는 날엔 오후 1시에 출근해 일상적 개인 훈련으로 철저히 몸 관리를 한다. 우리 나이 마흔에도 꾸준히 컨디션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박용택의 야구 인생은 '폼생폼사(폼에 살고 폼에 죽는다)'다. 더 정확히 말하면 베이스에 살아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타격 자세를 바꾼다. 지금까지 몇 번 정도 다른 타격 자세로 타석에 섰을까.

"글쎄요, 지금까지 8000타석 이상 소화했는데… 같은 타석이라도 투수 공에 맞춰 자세가 달라지니 적어도 1만개의 타격 폼은 있지 않았을까요? 그냥 보면 같아 보여도 스탠스, 배트 쥐는 위치, 투수를 바라보는 시선 각도 등이 미세하게 다릅니다."

'야구가 어렵다'는 그의 첫마디가 조금은 이해됐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칠 것 같던 박용택은 최근 슬럼프를 겪었다. 타율은 2할 후반대로 떨어졌다. 스스로 "지금까지 야구를 하며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말할 정도다.

"문득 제게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멘붕(멘털 붕괴)'에 빠졌죠. 오만 고민에 밤잠도 수없이 설쳤습니다."

그가 찾은 해법은 '내려놓기'였다. 박용택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난 이미 많은 걸 이룬 '놈'이더라. 맘 편히 먹으니 잡생각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최근 7경기 중 3경기서 2안타씩 때리며 타격감을 다시 끌어올리는 중이다.

박용택은 '별명 부자'다. 팬들이 '택'자를 뒤에 붙여 만들어 준 별명만 수백 개다. 박용택이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그중 '팬덕택'이다.

"2014년 두 번째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마치고 제가 인터뷰에서 '팬들 덕분에 재계약했다'고 말했는데 그걸 보고 한 팬이 붙여줬어요. 의미도 좋고, 어감도 입에 착착 붙어서 마음에 들어요."

이제 개인 기록 욕심은 버렸다는 박용택에겐 단 하나의 소원이 있다. 지금까지 껴본 적 없는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다. 그는 "매년 우승 장면을 TV로 볼 때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며 "선수로서 마지막 한(恨)을 꼭 풀고 퇴장하고 싶다"고 했다. 김현수가 가세하고 채은성·오지환·양석환 등 젊은 선수들이 분발하고 있는 LG는 현재 리그 4위(26승25패)다.

박용택은 "체력적으론 문제없다"고 말했다. 홈 경기가 있는 날엔 오후 1시에 출근해 개인 훈련 루틴을 따르며 철저히 몸 관리를 한다. 지금의 그를 만든 거의 유일한 규칙이다. 불혹(不惑)의 남자에게 언제쯤 은퇴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저도 몰라요. 그냥 생각 안 하고 지금 상황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언제까지 뛰겠다'고 정하는 것도 욕심이잖아요(웃음)."

인터뷰 내내 박용택의 누런 오른 손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의 무게를 버텨내면서 깊이 박힌 굳은살이었다. 그는 모른다고 했지만, 앞으로도 박용택이 방망이를 굳게 쥐고 타석에 서는 모습을 꽤 오래 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