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나없이 '내로남불' 하며 살아갑니다. 타인을 향해 내로남불이라 비난하는 것조차 나의 내로남불입니다. 눈과 귀와 입으로 살아가는 한 내로남불은 영원합니다. 마음과 마음으로 만나 내 것을 내어주지 않는 한….
홍여사 드림
아내는 가끔 저에게 스마트폰을 내밀며 이거 한번 보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어느 부부의 의견 충돌이나, 시집 스트레스 혹은 유별난 처가가 인터넷 도마에 올랐을 때, 그 내용이나 댓글을 같이 읽어보자는 겁니다. 그럴 때면 저는 웬만하면 토를 달지 않고 받아 읽기는 합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하죠. 이 사람들, 이런 남부끄러운 얘길 왜 올리지?
그런데 오늘은 제가 이 자리에 저희 부부 이야기를 털어놓으려는 참입니다. 저의 말 한마디가 아내로부터 이토록 심한 반발과 비난을 받을 '망언'이었나 싶어서 말입니다.
저희 둘은 결혼 3년 차, 아직 아이가 없는 부부입니다. 둘만 떼어놓고 보면, 오래된 연인인지 신혼부부인지 모호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죠. 혼인 서약의 위력을 실감하는 건, 아무래도 양가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결혼과 동시에 배우자의 부모님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마 이 대목에서부터 아내와 제 생각은 어긋나기 시작할 겁니다. 아내는 아마 그럴 겁니다. 비교도 안 되는 걸 비교도 하지 말라고!
제가 알기에는, 부모님과 아내가 서로에게 못할 말을 하거나, 갈등을 겪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아내는 지난 3년의 마음고생이 너무나 버거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제일 크게 문제 삼는 것이 '전화'입니다. 결혼 이후 한두 달은 작정하고 자주 전화를 드렸지만 그 뒤로는 자연스럽게 횟수를 줄여갔던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하셨다는 게 문제죠. 한 주에 한 번은 전화를 거시는데 그게 아내에게는 보통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아들과 자주 통화하시면서 왜 꼭 며느리하고도 통화하시려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어머니 딴에는 친해지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고요. 그러나 아내는, 바로 그 점이 부담스럽답니다. 왜 억지로 친해지려고 하시느냐고요. 그리고 딱히 할 말이 없는데 전화받는 것, 내 기분 상관없이 재롱(?)떨어야 하는 것, 그게 얼마나 고역인지 아느냐고요. 그리고 아내는 또 이렇게 말하더군요. 우리 엄마는 당신한테 전화 스트레스 주지 않잖아?
그렇기는 합니다. 결혼 직후에 저도 아내처럼 장모님께 일부러 자주 안부 전화를 드렸었는데 의외로 장모님은 그걸 불편해하시더군요. 딸과 매일 통화하니까, 사위는 따로 전화 안 해도 된다고 거듭 말씀하셔서 횟수를 줄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장모님은 워낙 쿨하신 성격에 미혼의 자녀도 둘이 더 있고, 아직 일을 하시니 당신의 스케줄 자체가 무척 바쁘십니다. 저희 어머니도 그런 분이면 얼마나 쉬울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혼자 지내시며 관심이 주로 자식에게 쏠려 있는 분이고, 더구나 자식이라고 저 하나 있습니다. 장모님과는 처지도 성격도 다른 분입니다. 제 생각에는 아내가 그런 차이를 이해하고, 상식선을 넘지 않는 범위까지는 받아주었으면 싶었습니다. 자식도 이런 자식, 저런 자식 있듯이 부모도 이런 부모, 저런 부모 있잖습니까? 내 부모님 수준에 맞춰서 당신 부모님을 뜯어고쳐 놓으라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아내는 언제 전화 올지 모른다는 자체가 너무 힘들다고 했습니다. 저한테 '중간 역할'을 제대로 해달라더군요. 난감했습니다. 어머니한테 뭐라고 말해야 상처를 드리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할지. 며느리는 별로 안 친해지고 싶어한다고 할까요?
그래도 어떻게 간신히 말씀을 드리긴 드렸는데, 어머니 반응이 또 의외였습니다. 며느리는 전화할 때마다 반겨주던데 하시며 당황해 하시더군요. 그래도 어쨌거나 제가 말씀을 드린 이후 어머니의 전화는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인드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나 봅니다. 저희가 요즘 이사 갈 새집을 구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집을 같이 알아봐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니 자연히 전화 통화가 잦아졌고, 하루는 아내가 전화를 안 받으니까 몇 번이나 부재중 전화를 남기셨다네요. 그날 저녁 아내가 제게 그러더군요. 내가 왜 이렇게 시달리며 살아야 하느냐고요.
그 말 들으니 참 비참했습니다. 나와 결혼하는 바람에 이렇게 힘들어졌다니 말입니다. 어머니께 또다시 말씀은 드리겠지만, 아내가 원하는 만큼의 자유를 얻어주기 위해서는 아들로서 할 수 없는 정도의 말까지 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도 알 겁니다. 저는 그런 말을 여간해 못하는 사람임을. 아내는 저의 그런 점이 좋다고 했었습니다. 부드럽고, 한없이 너그러워서 나를 선택했다고 했습니다. 그래 놓고, 지금 저에게 두부모 자르듯 어머니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겁니다.
저는 정말 참담한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우리의 집 장만에 큰돈 보태신 분 아니냐. 평생 근검절약해 모으신 재산 아들한테 물려줄 생각밖에 없으신 분이다. 그걸로 정상참작을 좀 해주면 안 될까?
그런데 제 말에 아내는 폭발하고 말더군요. 돈 받았으면 입 다물라 소리냐고 하더군요.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를 바꿀 수는 없으니, 그거라도 위안을 삼아보자는 소리라고요. 하지만 아내는 점점 더 눈을 크게 뜨고 몰아붙이더군요. 아니 할 말로, 그 돈이 아들인 당신 주는 돈이지 나 주는 돈이야? 말문이 막혔습니다. 일심동체로 한편이 돼달라면서도 여차하면 남남처럼 말하니 말입니다. 그렇게 갈라 말하자면 저라고 장모님께 불만이 없는 것 아닙니다. 사위로서 듣기 민망한 말씀까지 돌직구로 던져버리시는 성격에 상처도 많이 받았지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강한 성격 덕분에, 매사에 쿨하게 잘 넘어가 주시는 거겠지. 아내도 그렇게 좀 이해해줄 수 없을까요?
예전에 아내가 별별다방의 사연 하나를 보여준 일이 있습니다. 신혼집 장만에 더 많은 돈을 냈으니, 며느리 노릇까지는 안 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어느 아내에 대한 이야기였죠. 저는 그때 그 주장에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족관계를 어떻게 돈으로 환산하나? 하지만 아내는 지금의 저를 그때 그 여성과 똑같은 주장을 하는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돈이 가족 간의 예의보다 중요하냐고 따져 묻습니다.
사실 그 말은 전에 제가 했던 말입니다. 돈 냈으니 며느리 노릇은 거부한다던 그 여성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때 아내가 뭐라고 말했던가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그래 놓고 이제 와서는 딴소리를 합니다. 돈 얘기가 여기서 왜 나오느냐고….
그때는 맞았고 지금은 틀린 걸까요?
※실화를 재구성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