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렵(川獵)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천렵, 천렵 하고 소리 내어 발음해보면 서늘한 강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종아리 사이를 스치며 작은 물고기들이 지나는 것 같기도 하다.

천렵이라는 말 다음에 '국'이나 '탕'이라는 명사가 따라붙는 것도 좋다. 냇가에서 잡은 물고기를 바로 끓여 먹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게는 천렵국이나 천렵탕에 대한 추억이 그리 많지 않다. 외가 근처에 있던 하천에서 겨우 잡은 몇 마리의 피라미나 모래무지를 한두 번 끓여 먹어 본 것이 전부였다. 텁텁한 고추장 맛과 비릿한 흙냄새가 반쯤 섞여 있던 맛. 이후에도 내게는 민물고기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 술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민물고기의 매력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다. 전북 남원의 어탕국수와 충남 금산에서 맛본 도리뱅뱅이는 술을 곁들이지 않고는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없었다. 특히 민물고기를 끓인 음식은 술을 곁들일 때도 그만이지만 술을 마신 후에 더 반갑게 다가오기도 한다.

과음을 한 다음 날 아픈 속을 부여잡고 매번 찾는 곳이 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파주, 그곳의 청산어죽. 이곳에서는 1급수 금강에서 공수해 온 민물고기를 오랜 시간 끓여 걸쭉한 어죽(천렵국)으로 내어온다. 푹 고아낸 후 다시 고운 체에 걸러낸 덕분일까. 민물고기들의 형체가 남아 있지 않아 처음 이 음식을 접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어죽이 나오면 먼저 익는 소면을 깻잎이나 버섯 같은 야채와 함께 먹는다. 그러고는 이마의 땀을 닦아내 가며 되직한 국물과 수제비를 떠먹다가 마지막에는 밥을 넣고 죽처럼 끓여 먹는다. 친한 이들과 함께한 자리라면 빙어에 양념장을 발라 구운 도리뱅뱅이와 고소한 민물새우튀김을 곁들여도 좋겠다.

음식에 대한 기억은 음식의 맛과 함께 그 음식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억은 곧 나이테처럼 쌓이며 추억이 된다. "아들과 천렵을 한다 다리 밑에서 웃통을 벗고/ 땀을 뻘뻘 흘리며 소주를 마시며/ 나도 반은 청년 같았다/ (중략)/ 알고 보면 우리가 사는 이 큰 별도 누군가 내다 버린 것이고/ 긴 여름도 잠깐이다/ 한잔 받아라."(이상국, '아들과 함께 보낸 여름 한철')

청산어죽(031-939-8106)

어죽(8000원), 도리뱅뱅이(1만원), 민물새우튀김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