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美) 국방부에 주한미군 병력 감축 옵션 준비 명령을 내렸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4일 “또다시 문정인 특보의 말이 실현됐다”는 얘기가 나왔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지난달 30일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을 통해 “(남북) 평화협정이 체결된 뒤에는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당시 문 특보의 발언이 논란으로 번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지만 파장은 계속됐다. 현 정권에서는 문 특보가 정부 정책보다 한발 앞선 발언을 하면 청와대가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가, 얼마 뒤 그 발언이 실제로 현실화되는 패턴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문 특보는 현 정권의 민감한 외교·안보 정책 사안에 대해 ‘개인의견’임을 전제로 지속적으로 의견을 밝혀왔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한 한·미 연합훈련 축소가 대표적이다. 문 특보는 작년 각종 언론 인터뷰와 세미나에서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은 핵 및 미사일 활동을 중지하고, 한미는 군사훈련의 축소·중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때마다 정부에서는 “문 특보의 발언은 학자로서의 소신”이라고 부정했지만, 결국 한미 연합 훈련은 축소됐다.
문 특보는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와 관련해서도 일부 언론을 통해 “사드 배치는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으니, 국방부를 통해 미국 쪽에 잠정적으로 중단 요구를 할 수밖에 없다”고 언급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발언이 있고 나서 청와대는 실제로 사드와 관련한 진상 조사와 환경영향평가 실시를 지시했다. 사드는 여전히 완전히 배치되지 않은 상태다.
문 특보는 작년 9월에는 송영무 국방장관이 국회에서 언급한 ‘참수부대 운영 계획’에 대해 “상당히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했다. 송 장관은 이와 같은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국회에서 “학자 입장에서 떠들고 있으며, 특보 같지 않아 개탄스럽다”고 했다가 청와대로부터 ‘엄중 주의’ 조치를 받기도 했다. 결국 국방부는 작년 12월 국내 언론에 “참수부대라는 명칭을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 역시 문 특보의 발언이 실현된 것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 특보의 주한미군 철수 발언에 대해 “문 특보는 특보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교수”라며 “풍부한 정치적 상상력을 도움받기 위해 대통령이 특보로 임명한 것”이라고 했었다. 문 특보는 이후에도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자 기자들과 만나 “나는 (주한미군 주둔을) 찬성하는 사람”이라고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당 관계자는 “또다시 ‘개인 의견’이라던 문 특보의 발언이 실현됐다”며 “이 정권에서 사실상 상왕(上王)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야권에서는 “미국 측에서 감축 문제가 나온 만큼 현 정부는 미북회담이 끝나면 기다렸다는 듯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거론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