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대통령이 되었을 사람이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자신의 어머니이자 제41대 미국 대통령 조지 H. W. 부시의 부인 바버라 부시 여사를 이같이 언급했다. 남편과 맏아들, 그리고 둘째 아들의 정치 활동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며 부시 가문을 최고의 정치가문반열에 올려놓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17일(현지 시각) 바버라 여사는 남편과 아들(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두 번째 여성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9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그는 딸을 백혈병으로 잃고 막내 아들이 난독증을 앓는 등 아픈 가족사를 기부 운동 등 자선 활동으로 승화시켰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 탓에 가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지만, 미국 역대 대통령 부부 중 최장기간 결혼생활과 엄격한 자녀 교육법으로 ‘국민 할머니’로 불리기도 했다.
◇ 父子 대통령 만든 숨은 공신
뉴욕타임스(NYT)가 바버라 여사를 “명백한 정치적 자산”이라고 칭할 만큼 그는 부시 가문의 정치적 성공을 이끈 장본인이었다. 남편인 H.W. 부시 전 대통령이 1980년 부통령에 출마할 당시 선거 캠페인에서 재치있는 연설로 인기를 끌며 표심을 사로잡았다. 그는 부시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부통령 선거와 1988년 대통령 선거, 1992년 대통령 재선 때도 자리를 지키며 유세를 도왔다.
부시 전 대통령의 4년 임기 내내 바버라 여사는 설문조사에서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성’으로 꼽혔으며, 남편의 지지율이 떨어졌을 때도 그의 인기는 변함이 없었다. 퇴임 7년 뒤인 1999년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3%가 바버라에 대한 우호적인 의견을 보였다.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이 대선에 도전할 때도 바버라 여사는 최전선에서 아들을 지원했다. 그는 모금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아들을 대신해 여러 주를 방문하며 유권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바버라 여사가 “언제나 최고의 충고를 해줬다”며 자신의 어머니를 치켜세웠다.
둘째 아들인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2016년 대선에 도전할 때도 바버라 여사는 적지 않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둘째 아들의 공화당 후보 경선 출마를 앞두고 바버라 여사는 TV 인터뷰에서 “이미 두 명의 부시 대통령으로 충분하다”며 “더 나은 후보자들이 있다”고 출마를 반대했다. 그러나 이후 마음을 바꾼 그는 이메일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젭은 백악관을 되찾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며 지지를 요청했다.
◇ 아픈 가족사, 사회 활동으로 승화
1925년 뉴욕에서 태어난 바버라 여사는 출판사를 운영했던 아버지와 법관의 딸이었던 어머니 덕분에 사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며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 그는 불과 12살 나이에 172cm의 큰 키 덕분에 어디에서나 주목을 받았으며, 대학 입학을 앞두고 기계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만큼 생활력이 강했다.
바버라 여사는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 1941년 댄스 파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듬해 부시 전 대통령이 해군으로 징집되면서 잠시 떨어져 있다가 1945년 결혼식을 올렸다. 그로부터 일년 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태어났고, 둘째 딸 로빈, 젭, 마빈, 닐, 도로시가 태어났다.
1953년 둘째 딸 로빈이 갑작스레 백혈병으로 판정을 받으며 부시 집안은 가장 어두운 시기를 보냈다. 로빈은 병을 판정받은 후 7개월 뒤 사망했다. 바버라 여사는 딸의 죽음에 대해 “그러한 고통이 가족의 관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남편과의 관계가 끈끈해졌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여동생이 죽음 이후 어머니와의 관계가 돈독해졌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바버라 여사는 슬픔을 사회 공헌 활동으로 승화시키기 시작했다. 평정심을 되찾은 바버라 여사는 백혈병 연구를 위한 모금 재단을 설립했다. 또 아들 닐이 난독증을 앓자 아들을 돌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캠페인 운동을 벌이고 재단을 세워 80만달러를 기부하는 등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구설수에 오르기도
바버라 여사는 소탈하고 친근한 성격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때문에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여사의 호화로운 생활 습관, 냉랭한 성격과 종종 비교됐다. 바버라 여사는 특유의 재치있는 솔직한 화법과 가짜 진주목걸이를 즐기는 소탈한 모습으로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가슴아픈 사연이 담긴 백발로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덕분에 ‘국민 할머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바버라 여사는 딸 로빈이 백혈병을 앓을 때 받은 스트레스로 백발이 됐다.
그러나 바버라 여사의 모습이 철저히 계산된 이미지라는 지적도 있다. 바버라 여사의 전기를 쓴 작자 도니 래드클리프는 “바버라 여사는 부시 정권을 돕기 위해서라면 뭐든 했을 사람”이라며 “그의 이미지는 계산된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바버라 여사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입담으로 가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1990년 미국 명문 여자대학인 웰슬리대학 학위수여식에 연설자로 초대받은 그는 “여기 관중들 중에 언젠가 내 발자취를 따라 대통령의 부인이 될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은 결혼을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남편의 성공으로 출세한 여성의 경력은 대학이 가르쳐야할 덕목이 아니라며 바버라 여사의 방문에 항의했다.
또 2005년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이 재임할 당시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텍사스를 강타했을 때 바버라 여사는 재난 현장을 방문해 “빈민들이 덕분에 대접을 잘 받고 있지 않느냐”라고 말해 이재민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