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100만명에 이르는 조선인민군을 호령하고 핵무기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보유하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가운데 정작 미북 정상회담 장소로 거론되는 미국이나 유럽으로 갈 수 있는 항공기는 마땅치 않아 보인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WP는 이날 북한 전문가들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미국 워싱턴이나 스웨덴, 스위스까지 타고 갈 수 있는 장거리 항공기가 북한에 없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관영매체를 통해 알려진 김 위원장의 전용기 ‘참매 1호’는 소련 시절 제작돼 낡았을 뿐더러 약 4800km 비행만 가능한 단거리 전용 항공기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장거리 비행의 필요성이 없었던 북한으로서는 이를 위한 정비와 비행 테스트를 해왔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조지 W 부시 전 행정부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에서 선임 동북아 분석관을 지냈던 수미 테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항공기는) 낡았다”며 “우리는 그들의 옛 소련 항공기를 두고 놀리곤 했다”고 말했다.
고려항공 소유의 다른 항공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미 항공전문지 ‘에어웨이 매거진’의 엔리케 페렐라 편집장은 2016년 방북 당시 “고려항공이 가진 20여개의 항공기 중 운행이 가능해 보이는 것은 매우 적었다”며 “활주로에 있던 항공기 중 일부는 커버로 덮여있거나 부품이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현재는 회담 장소로 판문점이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또는 미국, 싱가포르, 스위스, 스웨덴 중 한곳으로 정해질 경우, 김 위원장이 전용기를 타고 회담장으로 이동하다가 중간에 급유를 해야할 땐 어디에 들를지도 애매해진다. 북한 국영 항공사인 고려항공은 국제연합(UN) 제재로 아프리카와 유럽 노선 등이 끊긴 상황이다.
물론 김 위원장이 우방인 중국이나 러시아의 항공기를 빌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첩보 목적으로 기내에 도청 장치를 설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정상 국가’를 표방하는 김 위원장의 첫 항공 여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모양새도 좋지 않다.
빅터 차 CSIS 한국 석좌는 “장거리 여행 자체는 한국이나 스웨덴이 북한에게 항공기를 빌려주는 방안도 있어 문제될 것은 없다”면서도 “다만 그렇게 하면 김 위원장이 민망해질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의 역사적인 첫 회담에 임하는 데 자국 항공기 정도는 타고 가야 위신이 서지 않겠느냐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참매 1호나 고려항공의 최신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참매 1호의 기종인 Il-62은 러시아와 수단, 우크라이나 대통령들이 여전히 사용하는 기종이기 때문이다. 찰스 케네디 영국 비행전문기자는 “고려항공은 2010년 보잉 757과 능력상 큰 차이가 없는 투폴레프 기종의 항공기 2개를 확보했다”며 “고려항공의 최신 항공기들은 쿠웨이트나 말레이시아 등으로 북한 해외노동자를 실어나른 바 있다”고 했다.
케네디 기자는 이어 “평양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9500km에 달하는 거리를 비행하는 것은 북한의 기존 비행 반경에서 벗어나지만, 항공기 정비가 극히 기초적인 기술임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이 항공기를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데에는 문제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