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은 180억원… 18개 혐의 가운데 16개 '유죄'
"대통령 권한 남용 막기 위해 책임 물어야"
"'삼성 승계' 청탁 인정 안 돼"… 제3자 뇌물 무죄

뇌물수수·직권남용·강요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근혜 전 대통령이 1심에서 징역 24년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공소사실 18개 가운데 16개를 유죄로 인정했다. 2016년 11월 불거진 국정농단의 최종 책임이 박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고, 이에 따라 중형 선고도 불가피하다고 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

◇"대통령 권한 남용 막기 위해 엄중한 책임 물어야"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김세윤)는 6일 열린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4년에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이는 최순실씨의 1심 형량인 징역 20년보다 무거운 형이다. 검찰은 앞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에 벌금 1185억원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가 원수이자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오직 헌법에 따라 행사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오랜 친분을 유지한 최순실씨의 지인 채용 및 승진 등을 기업에 요구했고, 국민으로 위임받은 대통령 지위를 남용해 기업재산권과 경영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의 범행이 밝혀지면서 국정질서에 큰 혼란을 야기했고, 탄핵 결정으로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사태까지 이어졌다”며 “주 책임은 헌법상 책임을 방기하고 국민이 부여한 권한과 지위를 사인(私人)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이를 통해 국정을 농단한 최씨에게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범행을 모두 부인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최씨에게 속았다고 하는 등 책임을 전가한 부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다시는 대통령이 함부로 권한을 남용해 국정 불행이 이어지게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엄중한 책임을 물을 수 밖에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래픽=김란희

◇18개 혐의 중 16개 유죄 인정…정유라 승마지원 73억 '뇌물'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혐의 18개 가운데 16개를 유죄로 인정했다. 최씨와 공범 관계인 혐의는 13개인데 11개를 유죄로 판단했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강요 혐의는 대부분 유죄로 인정됐다. 대기업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출연금 774억원을 강요한 혐의와 현대차에 최씨 지인 회사 납품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광고 물량을 몰아받은 혐의 등이다. 포스코에 펜싱팀을 창단하라고 요구한 혐의와 그랜드코리아레저(GKL)에 최씨의 회사인 더블루케이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으라고 요구한 혐의, 삼성그룹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 2800만원을 요구한 혐의 등이다.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와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에 대한 사직 요구, 영화·도서 관련 지원배제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다수의 종사자가 유·무형의 불이익을 당했고, 담당 기관 직원들이 청와대 등의 위법부당한 지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직업적 양심에 반하는 일을 고통스럽게 수행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뇌물 혐의였던 롯데그룹의 K스포츠재단에 대한 70억원 지원 요구와 SK그룹에 대한 89억원 요구도 재판부는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롯데그룹의 재단 지원은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와 관련된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점에 관한 공통의 인식 또는 양해 하에 이뤄진 것으로 보기 충분하다”고 했다. SK그룹에 대한 지원 요구와 관련해서도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삼성그룹으로부터 최씨 딸 정유라씨 승마활동에 213억원을 지원받거나 약속받은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72억 9427만원과 차량 4대를 무상으로 사용한 부분을 유죄로 판단했다. 코어스포츠 용역대금 36억3484만원과 말 3필·보험료 36억5943만원이다. 뇌물수수 유죄 판단이 내려진 공범 최씨의 1심 선고와 내용과 같다. 두 사건은 같은 재판부에서 재판을 맡았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 정유라에 대한 승마 지원이라고 파악하고, 삼성전자 자금으로 36억원이 넘는 돈을 최씨 소유인 코어스포츠 계좌에 송금했다”며 “기업활동 전반에 영향력을 가진 대통령이 직무관계와 연관 있는 대가관계에 따라 거액의 돈을 받았다”고 했다.

◇삼성의 미르·K스포츠재단·영재센터 지원은 '무죄'
박 전 대통령의 혐의 가운데 무죄로 인정된 제3자 뇌물수수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지원해주는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204억원 출연을 요구한 혐의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 2800만원을 부당 지원받은 혐의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 사이에 ‘부정한 청탁’이 없었다고 봤다. 제3자 뇌물수수죄가 성립하려면 부정한 청탁의 존재가 인정돼야 한다. 제3자 뇌물수수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부정한 청탁을 받은 경우에만 성립한다.

재판부는 “경제전문가들이 삼성의 승계작업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일반인 입장에서는 승계작업이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면서도 “형사법정에서 부정청탁 대상이 되는 승계작업은 그 개념이 명확해야 하고, 증명력 있는 증거에 의해 증명돼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개별 현안들이 이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라는 목표를 위한 것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부정한 청탁의 전제가 되는 현안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설사 현안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박 전 대통령이 이를 인식하고 자신의 직무집행과 대가관계가 있었다고 인식하는 것은 어렵다”며 “현안과 관련해 명시적 청탁은 물론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지난 2월 13일 최씨의 1심 선고에서도 재판부는 같은 취지로 재단과 영재센터 지원에 대해 부정 청탁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