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드문 흩어진 별자리처럼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하다. 가슴은 납작하고 눈썹은 잔뜩 구겨졌다. 이 비쩍 마른 열일곱 살 계집아이(시얼샤 로넌)는 엄마에게 "내 이름은 레이디 버드야. 내가 지은 이름이니 이제부터 날 그렇게 불러줘"라고 말한다. 엄마(로리 멧칼프)는 비웃는다. "별난 소리 다 듣겠네. 네 이름은 크리스틴이야." 계집아이는 순간 치솟는 화를 누르지 못하고 달리는 차문을 열고 뛰어내린다. 스크린엔 이때부터 투명한 기타음이 흐른다. 엄마와 딸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4일 개봉한 '레이디 버드(감독 그레타 거윅)'는 이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이 함께 보면 좋을 영화다. 딸은 평범한 삶이 죽기보다 싫고, 엄마는 그런 딸을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한다. 올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그레타 거윅은 이 영화를 통해 여성들만의 미묘한 관계, 그중에서도 엄마와 딸 이야기에 집중한다. 너무 사랑해서 상처 주고 미워하고 또 결국 화해하는 그런 얘기 말이다. 영화는 그 과정이 때론 뭉개진 갖가지 색깔 크레파스처럼 어지럽지만 그래서 또 아름답다고 말한다.
10대 소녀 인생에 바람 잘 날 별로 없다. 크리스틴은 공부도 못하면서 뉴욕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어 한다. 그가 살고 있는 새크라멘토는 지독하게 조용한 동네다. 가끔 남자친구도 만나고 싶고 돈 많은 친구와도 놀고 싶다. 욕심이 지나치면 길을 잃는다. 크리스틴이 자기 뜻대로 구는 동안 누군가는 상처 받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인다.
영화는 고장난 기타처럼 빽빽거리던 크리스틴이 천천히 자기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성숙이란 순식간에 돋아나지 않는다. 새벽은 밤하늘 별을 세다가 지칠 때쯤 비로소 찾아온다. 대학에 떨어지고, 제일 친했던 친구가 멀어지고, 남자친구와 끊임없이 엇박자를 빚어도 남 탓 같은 것을 하지 않게 될 때, 친구에게 '그래도 난 네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법을 배우면서 크리스틴은 서서히 어른이 되어간다. 아이가 그렇게 자라나는 동안 부모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며 뒤에 물러서 있다. 누군가의 성장이란 결국 누군가의 인내를 딛고 완성되는 것이라고 영화는 넌지시 말한다.
질풍노도처럼 사는 세상 모든 딸에게 이 영화 마지막 장면은 특별하다. 지독한 숙취에서 깨어난 크리스틴은 길 한복판에 서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한다. "이젠 날 '레이디 버드'라고 안 불러도 돼. 내 이름은 크리스틴이니까." 평범한 자기 이름을 되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특별해진다.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