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3일 하루 동안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13개의 글을 올렸다. 유소년 운동선수들을 만나는 등 훈센의 하루 일정을 올린 이 글들에 3000~5000여 건씩 '좋아요'가 달렸다. 훈센의 페이스북 팔로어는 975만명에 달한다. 캄보디아 20세 이상 인구 수와 맞먹는다. 페이스북 계정은 33년 독재자인 훈센이 이번 7월 총선에서 권력을 다시 연장할 수 있게 하는 신무기다.
훈센의 페이스북 게시물은 거침없는 언사로 가득하다. '당신들 관뚜껑에 못을 박게 하지 마라' 'BM-21(구소련의 로켓포)로 날려 버리겠다'라며 반체제 인사들을 협박하는 연설을 계정에 올리면, 훈센의 팔로어들은 열심히 '좋아요'를 누른다. 지난 2월에는 "훈센의 페이스북 글에 달린 '좋아요'가 인도네시아 등의 '클릭 농장(click farm)'에서 구입한 것이란 의혹을 페이스북 본사가 밝혀 달라"는 소송이 페이스북 본사가 있는 캘리포니아주 법원에 제기되기도 했다.
훈센은 페이스북에서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지만, 훈센에 반대하는 포스팅을 하려면 감옥행을 각오해야 한다. 4일 캄보디아 언론들은 2016년 페이스북에 반(反)훈센 발언을 담은 영상을 올린 혐의로 30대 캄보디아 남성이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유성진 이화여대 교수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 보급으로 독재자가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자신의 타이밍에 맞춰 한꺼번에 뿌릴 수 있게 됐다"며 "짤막하고 자극적인 글로 사람들을 흔들 수 있다는 점도 독재자에겐 큰 무기"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을 잡으면 정치를 잡을 수 있다는 방정식이 캄보디아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선 페이스북이 독재 권력의 무기가 돼 정치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이들이 대부분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장조사기관 인터넷월드스태츠에 따르면, 캄보디아의 인구 대비 인터넷 보급률은 페이스북 계정 보유율과 거의 같다. 인구 중 65%에 달하는 필리핀의 인터넷 접속자도 대부분 페이스북에 들어간다.
지난해 필리핀 인터넷 언론 '래플러'는 페이스북에서 유통되는 가짜 뉴스의 흐름을 분석, 26개의 페이스북 계정이 200만명 넘는 필리핀 이용자들에게 가짜 뉴스를 전파한 사실을 밝혀냈다. 2016년 필리핀 대선 전에는 두테르테를 위한, 두테르테가 당선된 후에는 반정부 세력을 겨냥한 가짜 뉴스를 생산해 냈다고 보도했다. 필리핀 정부는 지난 1월 래플러를 '가짜 뉴스 공급자'라며 법인 등록을 취소했다.
미얀마에선 페이스북이 '인종 청소'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미얀마에서 로힝야족 사태가 불거졌을 당시 페이스북이 혐오 발언을 퍼뜨리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디지털 분석가인 레이먼드 세라토가 미얀마 극우 불교단체인 '마바타(Ma Ba Tha)' 지지자들의 페이스북 게시물 1만5000여 건을 분석한 결과다. 인종 청소가 자행된 지난해 8월 전후 마바타 지지자들의 페이스북 게시물이 200% 증가했는데, 무슬림 로힝야족들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내용이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2일 미국 인터넷 매체 복스와 인터뷰에서 "미얀마에서 선동적인 메시지를 확산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페이스북을 둘러싼 잡음은 당분간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 개인 정보 등을 사용, 각국 선거에 개입한 SCL그룹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3일 SCL이 야권 지지자들이 투표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집회를 연 의혹을 조사하기로 했다. 지난달 19일 페이스북 개인 정보가 유출돼 정치 공작에 사용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페이스북 주가는 16%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