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인질극 속보(速報)가 타전된 것은 2일 오후 12시 40분쯤이었다. 범죄가 벌어진 서울 방배초등학교 앞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단축 수업’ 공지를 받은 학생들이 우르르 밀려 나왔고, 밖에서는 학교로 뛰어온 학부모들이 헐떡거리며 자녀를 찾았다.

울먹이는 학부모 오모(43)씨가 보였다. 그는 "무엇보다 아이가 놀랐을까 봐 걱정"이라면서 휴대전화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
학부모 방모씨는 회사에서 점심 먹다 '방배초 인질극' 뉴스를 접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가 떠오르자 온 몸이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휴가를 내고 학교 앞으로 무작정 달린 방씨 눈에 저만치 아이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걱정했잖아." 방씨가 아이 손을 쥐고 도망치듯이 집으로 돌아섰다.

2일 오전 11시 43분 발생한 서울 서초구 방배초등학교 인질극 뉴스에 학부모들이 학교로 뛰어와 정문 앞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교실 안은 한동안 패닉(공황)상태에 빠졌다. "잡힌 애가 4학년 O반이래요. 친구가 울면서 무섭다고 했어요. 방송에는 '문을 절대 열지 말아라' '창문 닫고 커튼까지 내려라'고 자꾸 나오고…" 6학년 문모(12)양 얘기다.
4학년 임모(10)양은 "엄마를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어요"라고 했고, 3학년 여모(9)양도 "우리 다 울었어요"라면서 교문 밖으로 나섰다. 방배초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 무렵 경찰은 흉기를 든 조현병(調絃病·정신분열증) 환자 양모(24)씨와 대치하고 있었다. 경찰이 양씨에게 빵과 우유를 건네는 순간 빈틈이 생겼고, 경찰은 일제히 달려들어 그를 제압했다.

◇ "졸업증명서 떼러 왔다." 그 남자는 흉기 감추고 있었다
경찰·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범인 양씨가 방배초를 어슬렁거리던 시점은 이날 오전 11시 32분쯤이다. 그는 당당하게 정문을 통과했다. "학교 졸업생입니다. 졸업증명서 떼러 왔어요." 이 말 한마디에 4교시 수업을 앞둔 초등학교 대문이 열렸다. 신원확인은 하지 않았다.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양씨는 곧장 교무실로 향했다. 여기까지 3분이 걸렸다. 그는 15cm 길이의 흉기를 지니고 있었다.

오전 11시 35분. 양씨가 교무실에 들어섰다. 그의 눈에 교무실에 심부름을 왔던 4학년 A양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흉기를 빼 들고 A양을 인질로 낚아채면서 방배초는 일순 혼란에 빠졌다. “억울한 사연이 있다! 기자를 불러달라!” 그가 소리 질렀다.

’초등학생 인질극’을 벌인 양모(24)씨가 2일 오후 서울 방배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방배초 학교보안관이 인질극 상황을 경찰에 알린 시점은 11시 47분이다. 경찰 병력 50여명이 학교 주변을 포위했다. 대치는 54분간 이어졌다. 경찰은 양씨와 대화를 나누며 사태 해결을 시도했다. 빵과 우유를 건네주자 양씨가 돌연 간질증세를 보였고, 이 틈에 경찰 특공대 대원들이 흉기를 빼앗았다. 상황이 종료된 시점은 오후 12시 43분이었다. 양씨는 조현병 뿐만 아니라 불안장애 등 각종 정신질환으로 치료받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방배초는 인질극 사건 이후 “학부모들에게 단축 수업을 하고 모든 학생들을 하교시킨다”는 내용의 통지문을 전송했다. 피해자 A양도 즉시 구출돼 인근 종합병원으로 옮겨졌다. 경찰 관계자는 “인질로 잡힌 여학생은 큰 부상은 없지만, 정신적인 충격이 크다고 판단해 병원에 이송했다”고 말했다.

양씨는 취재진에 “군대에서 가혹행위와 부조리, 폭언, 질타, 협박 등으로 조현증이 생겼다”면서 “전역 후 국가보훈처에 계속 보상을 요구했는데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확한 범행 동기를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는 방침이다.

◇學校가 치안 사각지대? 왜 자꾸 뚫리나
"아이 목숨이 장난도 아니고… 누구든지 죽을 수 있었던 상황 아닙니까." 이날 방배초 앞에서 만난 학부모 이모(41)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현행 학교안전 표준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학교 방문객은 신분증을 제출하고 출입증을 받아야만 학교에 들어갈 수 있게 돼 있다. 교직원이나 학부모도 예외는 없다. 그럼에도 흉심(凶心)을 품은 범죄자들은 초등학교 정문을 놀이터처럼 들락거렸다.

‘김수철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0년 김수철(53) 은 서울 영등포구 한 초등학교로 들어가 당시 1학년 여학생을 자신의 집으로 끌고 들어가 성폭행했다. 그가 아무런 제지 없이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장면이 CCTV에 잡혔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내 안에 욕망의 괴물이 살고 있다”고 진술했다. ‘욕망의 괴물’에게 초등학교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던 것이다.

여자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 범인 김수철이 사건이 벌어진 2010년 6월 7일 피해자를 집으로 데리고 가는 모습. 인근 폐쇄회로(CC)TV에 잡힌 장면이다.

2012년 서울 서초구 계성 초등학교에서는 우울증을 앓는 고교 중퇴생 김모(당시 18세)군이 수업 중인 교실에 침입하는 일이 발생했다. 김군은 당시 학급 회의를 하던 학생들에게 야전삽을 휘둘렀다. 이 일로 학생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건 당일 학교를 지키던 배움터 지킴이 2명·민간 경비원 1명은 속수무책으로 김군의 범행을 막지 못했다. 김씨도 ‘무사통과’였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교가 ‘치안 사각지대’로 전락한 까닭은 뭘까. 전문가들은 허술한 보안의식을 꼽는다. 범인들이 치밀하게 ‘침입동선(動線)’을 짠 것이 아니라, 모두 정문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1차 검문에서만 막아도 계성초·방배초 범죄는 예방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학교 보안의 첫 번째가 바로 접근 통제인데 실제 우리 나라는 동네 공원처럼 누구나 출입 가능한 공중장소처럼 인식되고 있다”며 “해외 선진국에서 ‘졸업증명서를 받으러 왔다’면 아이디(ID)카드를 발급하고, 그 카드로는 교실에는 접근할 수가 없도록 동선을 제한하는 보안체계가 짜여져 있다”고 말했다.

초중고 학교급(級)별로 보안등급을 달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범죄에 더 취약한 초등학교에 더 강력한 보안을 요구하는 법적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고,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초등학교는 소속 학생들의 연령대에 비해 안전망(網)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