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때로 책에 비유합니다. 지난 세월 책으로 쓰면 몇 권 된다는 분들 많습니다. 나이 많고 지위 높아야 책이 되는 건 아니겠지요. 젊어 죽은 시인 기형도(1960~1989)는 자신을 아무도 읽지 않는 책에 비유했더군요.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오래된 서적'). 프랑스 시인 랭보(1854~1891)는 반대로 "누구에게 나를 빌려줄까"('나쁜 피')라고 적었습니다. '나라는 텍스트를 이해할 이 과연 있을까?' 하는 오만이 묻어납니다.
내 삶을 글로 쓰고 싶다는 욕망은 옛사람에게도 있었습니다. 이번 주에 나온 '내면 기행'(민음사)은 고려~조선시대 선인(先人)의 자찬묘지명(自撰墓誌銘) 58편을 번역한 책입니다. 옛 선비들이 무덤에 들어갈 글을 죽기 전 미리 쓴 기록입니다.
이황(1501~1570)은 "태어나 크게 어리석었고 자라서는 병치레 많았다. 배움은 추구할수록 아득해지고 벼슬은 사양할수록 얽어들었다"고 고백합니다. 숙종 대 남인의 영수 허목(1595 ~1682)은 "허물을 줄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고 반성합니다.
'나'라는 책, 지금까지 어떻게 써왔나 돌아봅니다. 지난 일을 고칠 수는 없겠지요. 지금부터라도 똑바로 써야겠네요. 누가 펼쳐보아도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죠. 한 번밖에는 쓸 수 없는 책이니까요.